입사하고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전 세계를 뒤흔든 재앙이 덮쳤다. 처음에는 그냥 상례적으로 발생하는 독감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홍콩 바이어 측에서 혹시 마스크를 구할 수 있냐고 물어왔다. 꽤나 심각해질 기세로 느껴졌다. 당시에 한국은 마스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스크 100장을 사서 야채 수출 컨테이너를 통해서 수출 보냈다. 마스크를 떠나보내자마자, 한국도 마스크 구매 수량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바이어에게 보낼 때 몇 장 빼둘걸…
하늘길이 다 막히고, 국내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로 소통에 장벽이 생겼다. 그즈음에 홍콩의 B 담당자는 퇴사를 하고 C 담당자로 바뀌었다. C 담당자는 나와 나이가 동갑이었다. 중국에서 어린 시절 12살까지 살다가 부모님이 홍콩으로 이민 와서 살았던 친구였다.
이 친구와 얼굴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매일 야근하고 퇴근할 때쯤 통화를 하였다. 요즘 농산물 가격 추이라든지, 농작물 작황이라든지, 홍콩 시장의 상황이라든지, 시장에서 떠돌고 있는 소문이라든지 등 여러 정보를 주고받았다. 업계 담당자들의 나이대가 좀 높은 편이라 서로 말이 잘 통하는 부분이 존재했다. 그 친구는 항상 나한테 어려운 부탁을 하였다. 예를 들어 갑작스럽게 오더를 넣는다든지, 갑자기 취소를 한다든지, 장마 기간에 배추를 주문한다든지. 이렇게 1년 정도 같이 일하다 보니 서로 본 적이 없지만, 심리학 용어로 “라포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내 실적은 더 좋아졌다.
퇴사를 할 무렵, 그 친구도 같이 퇴사를 하였다. 그 친구는 바나나를 팔러 간다고 했다. 그리고 다국적기업에 바나나 영업담당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고 일했던 ‘펜팔’ 친구를 만나러 홍콩을 갔다. 얼굴을 본 적 없지만, 저 먼발치에서 그 친구가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비즈니스 관계는 철저히 이익이 되는 쪽으로 움직인다. 상대가 잘해주면, 나한테 잘해줌으로써 얻을 것이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일 거고, 반대로 나를 무시한다면 나한테 잘해주는 것이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출 업무 담당자로서 모든 사람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응대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진심을 다해서 응대하지 못했던 상대방 중에, 나한테 굉장히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반대로 친절하게 응대했던 누군가는 나에게 도움이 안 됐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관계라서가 아닌 개인 친분으로 알게 된 사람처럼 대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렇게 퇴사는 하였지만, 좋은 친구 하나는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