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에 입사하기 한참 전부터 거래하고 있던 베트남 거래처가 있다. K사에 L 대표님이다. 전형적인 베트남 아주머니셨다. 이 베트남 L대표님은 한국에서 가공식품류를 수입하여 베트남 식당, 음식점 등에 납품을 하는 업체였다. 내 사수가 퇴사를 하고 이 담당자를 누구에게 배분할까 회사에서도 고민이 많았었다. 거래규모와 발전가능성이 그렇게 크지 않고, 까다롭지 않은 바이어라고 판단하여, 당시에 갓 입사한 내가 맡게 되었다. “까다롭지 않다”라고 판단한 것이 실수였다.
담당자가 퇴사를 하고 내가 맡게 되었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한동안은 서로 교류가 없었다.
고춧가루의 재고가 떨어질 무렵, 그 L대표님에게 연락이 왔다.
Please help chili pepper powder to me.
‘이게 무슨 말이야?’ 고춧가루를 나에게 도와줘? 전임 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메시지가 왔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어 그 아줌마, 영어 논한다. 그거 고춧가루 실어 달라는 말이다”
“예?” -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면서도, 일단은 알겠습니다라고 한 뒤 전화를 끊고 절차대로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그렇게 계약서 한 장을 쓰는데도, 엄청 시간이 걸렸다.
No this word when YE doing, Why you?
이 내용은 원래 없던 내용인데 왜 담당자가 바뀌어서 생겼냐?라고 추정되는 문장
Please help price down to me
가격을 낮춰줘라고 추정되는 말
이런 말들을 쓰면서 소통을 했었다.
이 L 대표님과 에피소드가 많은데, 언제 한번 무역박람회 참석을 해서 면대면으로 처음 만났다. 그 자리에 L대표님과 고춧가루 공장대표님까지 셋이서 이야기를 하는데, 만나서 인사를 한 뒤로 4시간 동안 고춧가루 가격을 내려달라는 말 밖에 안 하셨다. 얼마나 끈질기던지, 고춧가루 공장 대표님은 담배를 피우신다고 자리를 뜨신 후 돌아오지 않으셨다. 4시간 동안의 요구 끝에 결국 0.5달러를 가격을 인하해 주었다. 그리고 밥값도 당시에 고춧가루 공장대표님이 내셨다.
또 다른 에피소드로는 40,000불을 수출하면 돈이 꼭 33,000불만 들어오고 7,000불은 다음에 보내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방식으로 거래를 해오다가 채권이 계속 불어난 채로 업무를 인수인계를 받았다. 자꾸 보내는 금액이 들쑥날쑥 하고 한날은 출장을 갔었는데, 현금으로 주는 것이 아닌가. 일단은 사고가 나지 않는 선에서 돈을 챙겨 들고 조마조마하게(강도, 소매치기) 귀국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출장을 갔을 때도 미팅을 끝내고 나갈 무렵, 현금으로 정산하자며 계수기를 꺼내고 금고 속에 있는 현찰을 꺼내서 돈을 센 다음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통역을 시켜 왜 이렇게 하는지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이렇게 비즈니스를 해야 자신이 많이 벌 수 있고 그래야 우리의 거래가 계속된다고 했다.
그리고 20년도에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베트남 출장길이 끊어졌다. 그리고 매번 송금하는 금액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거래 고려” 시그널을 보냈다. 다시 말해, 채권이 청산되기 전에 물건을 싣지 말라는 시그널이었다. L 대표님은 자신이 납품하기로 약속을 해놓고 우리에게 발주를 했는지 이전에 없던 메시지량을 보여주셨다. 매 초 매 분마다 “Please help ~~~~”라는 말을 써가면서 나를 설득하려는 게 아니던가.
“회사에서 채권이 청산되기 전에 물건을 싣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저는 물론 대표님을 도와주고 싶지만, 제가 회사에 손해를 끼치게 될 경우, 해고될 수도 있습니다.” 라며 강력하게 거절하는 표시를 했다. 그러자 자시는 7월 23일까지 물건을 받아야 된다고 했다.
“그러면 지금 채권금액인 약 8만 불이 넘는 금액을 청산해 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지금 저도 출장을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채권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 회사 경영진에서 K사에 대하여 굉장히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약간의 압박을 했다.
그러더니 자신이 유동성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고, 송금 자체를 못하니깐, 혹시 현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자신이 현금을 주겠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어리둥절하였다. “엥?” 일단은 현금을 맡아줄 아주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아서 보냈다. 그리고 현금을 받아놓았다. 그리고 고춧가루 선적을 진행하였다. 무역을 하면서 소액이지만, 대금의 일부를 현금으로 지급받은 건…… 처음이었다.
그 뒤로는 코로나로 왔다 갔다 하지 못하여서 이런 방식의 거래가 힘들다고 전달했고 그 뒤에는 정상적으로 은행을 통해서 거래를 한다만… 매번 고춧가루를 실을 때마다 돈을 깎아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