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기업을 판별하는 일은 단순한 서류 검토에 그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자료와 숫자, 계약서와 보고서 속 어긋남은 진심을 판별하는 단서일 뿐이다.
더 세밀하게, 더 저세히 우리는 기록과 자료를 하나씩 들여다보며, 기업의 선택과 행동 속에서 진정성을 읽으려 했다. 최소 천페이지부터 많게는 수만 페이지 기록을 꾸준히 검토한다
피해자 검증 스크린을 설계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진정성은 꾸며진 외형이나 달콤한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계약서 문구는 언뜻 완벽할 수 있지만, 실제 기업의 행동과 의도는 그 뒤에 숨겨져 있다.
기술 사용 내역과 생산물의 일치 여부, 경영자의 결정과 태도, 조직 내 작은 행동과 관행까지 관찰해야 한다. 모든 기록과 메모, 회의 내용이 하나의 퍼즐처럼 맞물려야만, 기업의 진심을 가늠할 수 있다.
그 과정은 반복적이고 지루했다. 수 많은 서류를 검토하고, 수많은 통화와 이메일을 점검하며, 때로는 기업의 현장을 직접 찾아 확인하기도 했다. 기업이 진심으로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그 기업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었다.
그로나 루푸스는 여전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루푸스는 내게 축복이지만, 그 축복을 도외시하면 무서운 결과가 온다. 머리카락의 3분의 2가 빠져 가발을 쓰고 일을 하기도 했다. 행여나 누가 가발을 쓴 날 눈치채지 않을까 위축됐다.
그러나 몸이 보내는 휴식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서류를 스크린하고 증거를 반복적으로 점검했다. 기록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기업의 진정성과 공익의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몸은 계속 망가져 간다. 그럴 만큼 내가 하는 일은 가치가 있을까
진정성 있는 기업을 판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업은 진정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가.”
“우리가 제공하는 지원이 실제로 의미 있는가.”
때로는 판단이 어렵고, 모호했다. 기업의 겉모습은 성실해 보이지만, 내부에서 도사리고 있는 문제나, 의도치 않은 선택, 잘못된 경영 판단은 새로운 문제를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기록을 다시 점검하며,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으로 사건에 접근하고자 했다. 우리의 목적은 기업을 평가하거나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었으니.
작은 기업이 다시 일어서는 순간, 우리는 보람을 느꼈다. 계약서 속 숫자와 보고서 속 문구가 아닌, 기업의 행동과 결정,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절박함과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때, 공익의 의미는 눈앞에 선명히 드러났다. 기록과 검토, 판단의 반복은 고단했지만, 그 과정이 곧 공익이었다.
그러나 허무함은 늘 함께한다. 아무리 진정성을 확인하고 최선을 다해 지원해도, 기업이 실패하거나 외부 요인으로 어려움에 처할 때, 우리의 노력은 온전히 결실을 맺지 못한다. 空益, 공허한 이익이라는 단어가 다시 마음속에서 새겨지는 순간이다. 허무한 순간이다.
재단 업무가 반복되면서, 우리는 점점 효율과 기록, 시스템을 중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중심에도 항상 사람과 기업의 진심이 있었다. 서류와 메모, 스크린은 도구일 뿐, 실제 공익은 그 과정을 성실히 수행하는 우리의 태도와 선택 속에 존재했다.
투병과 업무, 그리고 반복되는 판별 작업 속에서 깨달았다. 공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진정성 있는 피해기업을 가려내고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순간, 허무 속에서도 공익은 의미를 가진다.
공익은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 완전하지 않음을 인정하며, 하루하루 기록하고 판단하며, 기업이 다시 일어서도록 돕는다. 그 과정이야말로 공익이며, 허무 속에서도 달릴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