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멤버로 합류한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새 사무실, 시스템 하나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공익’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입에 올렸다.
각자의 책상에 쌓인 서류는 제각기 달랐지만, 마음만큼은 하나였다.
‘누구도 부당하게 짓밟히지 않게 하자.’
그 단순한 약속 하나로 새벽까지 사건 기록을 검토했고, 피로와 긴장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했다.
그때의 기억은 모든 게 생생하다.
의미와 목적이 선명했고, 나 자신이 그 안에서 작게나마 빛난다고 믿었던 그 순간.
하지만 시간이 흘러 7년차가 된 지금, 그때의 선명함은 거의 지워졌다.
작년 12월 급여 동결 소식이 전체 메일로 통보되었다.
별다른 설명도, 사전 논의도 없었다. 그냥 통보 메일 1통.
그저 “경영상의 사정으로 당분간 급여를 동결한다”는 몇 줄짜리 문장이 전부였다.
공익 재단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에게 급여의 높고 낮음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마음이 먼저 식었다.
‘이제 나는, 그저 하나의 숫자로만 존재하는구나.’
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재단 초기 우리는 "0"에서부터 시작하느라 서로 열심히 소통하면서 업무를 진행해 갔었다. 사건 하나하나에 진심을 녹이고, 진정으로 피해기업의 아픔에 공감했다. 그들의 호소에 경청하면서, 공익이라는 단어 아래 최선을 다했다. 몸을 무리한 탓에 3번의 심각한 건강상 위기도 왔었다.
진정성 하나로 뭉쳤던 우리, 충분한 이해와 사전 설명이 있었다면 급여 삭감도 언제든 가능하다. 그러나 전체 공유로 보낸 통보 메일 한통. 거기엔 이해도 공감도 없었다.
내가 속한 단체는 소위 외부에서 평가하는 성과도 많이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건 성과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공익이라는 단어 아래 진정성을 다해 최선을 다해 달리다 보니 자연스레 성과가 따라왔다.
단순한 공식이지만 정말 그랬다.
공익 단체에서 급여는 중요하지 않다. 동결, 삭감 그 어느 것도 공익을 위한 진정성이 있다면 얼마든지 오케이다. 의뢰인을 위한 기술 분쟁 소송도 그 어떠한 수임료도 성공 보수도 없이 지금껏 진행해 왔는데 급여 동결이나 삭감이 대수인가?
그러나 메일 1통 뿐인 급여 동결 통보는 개인적으로 꽤나 충격이었다.
나는 여전히 사건을 검토하고, 피해 기업의 자료를 분석하고, 회의록을 정리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이제는 나를 조금씩 깎아내린다.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신장은 자주 부어오르고, 뼈가 쑤신다.
아침마다 붓기 때문에 신발을 신기 어렵고, 저녁이면 관절이 굳어 걸음이 느려진다. 최근에는 발목에 염증이 심각하게 와서 걸을 때마다 통증이 심했다.
아픈 날에도 어김없이 장시간 회의에 들어갔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니었지만,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다. 누구도 내 피로를 언급하지 않았고, 나도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흐름에 맞춰 일했고, 마감에 맞춰 움직였다.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요즘도 몸 괜찮아요?” 하고 물으면,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괜찮아요. 익숙해요.”
그 말이 어느새 버릇처럼 굳어 있었다.
재단 안에서 나는 언제부턴가 ‘늘 버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프다는 말 대신 책임감을 보여야 했다.
피로 대신 성과를 이야기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나조차 나를 그렇게 취급하게 됐다.
지치면 안 되는 사람, 흔들리면 안 되는 사람, 늘 일을 마쳐야 하는 사람.
어쩌면 나 자신이 먼저 나를 소모품으로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당연함’의 무게는 점점 버거워졌다.
몸을 망치며 성과를 낼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가 조금씩 허물어졌다.
이 일이 정말 누군가의 구체적인 삶을 바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는 외형만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들 때마다 손끝이 멈췄다.
나는 여전히 사건을 정리했지만, 문장마다 공기가 빠지는 듯한 허무가 따라왔다.
우리의 초심은 과연 어디로 갔는가?
외부에서는 여전히 우리를 ‘공익의 상징’처럼 본다.
감사의 메일도 받는다.
“변호사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 말들은 늘 진심이었고, 나는 그 진심에 구원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진심이 조직 안으로 들어오면 다른 모양이 되었다.
그 따뜻함은 성과를 위한 한 두줄로 요약되거나, 실적의 항목으로만 남았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멀어졌다.
창립 초기에 함께했던 동료들의 진심은 이제 나도 알 수가 없다. 같이 묵묵히 일했던 일부는 재단을 떠났다. 그 빈자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졌다.
나도 어느새 그 흐름에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문득문득, 초창기의 밤이 떠오른다.
누군가 피곤한 얼굴로 “그래도 우리가 하니까 되는 거야.”라고 웃던 그 얼굴들.
그들은 이제 없다.
그 말도 더 이상 회의실에서 들리지 않는다.
요즘은 ‘공익’이란 단어를 입 밖에 꺼내기가 조심스럽다.
너무 오래 들어온 단어라서, 그 안에 진심이 남아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공익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남아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 믿음이 나를 점점 닳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몸이 조금 나아지면, 또다시 사건 검토를 한다.
통증이 심한 날에도 기록을 검토하고, 새벽까지 서면을 쓴다.
그게 일이고, 내 자리에서 할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나는 그렇게 한다.
그래야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데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내 몸을 갈아 넣어 누군가의 억울함을 덜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조직의 톱니로 남아 돌아가고 있을 뿐일까?’
대답은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공익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여전히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길이 옳은지, 이 선택이 의미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계속 걷는다.
그저 묵묵히, 조용히, 스스로를 소모해가며.
그게 지금의 나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사람, 나 자신에게는 여전히 버티고 있는 사람.
공익은 그렇게, 오늘도 내 안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다.
불꽃처럼 크지 않지만, 아직 꺼지지는 않은 불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