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숨 쉬고 있는 어린아이 때문이다.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하나다.
지금의 내가 해내고 싶을지언정 과거의 내가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과거에 나를 괴롭힌 대가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다.
무엇을 해야 그것이 끝날 수 있는 것이냐 물었더니 그 사람이 대가를 모두 받거나 내가 용서를 하면 된단다.
그전까지 나는 이미 여러 번에 걸쳐 고생 끝에 겨우 이 사람을 용서하는 데 성공한 줄만 알았다. 아니었던 것이다.
원래의 나라면 한참 전에 그 사람이 대가로 인해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용서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끙끙 앓으며 그 아픔을 찢어보고, 씹어보고, 뱉었다가 다시 삼켜도 보고 별의별 짓을 다했는데도 이렇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 자신과 씨름 중이다.
성인인 나로서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과 죽어도 용서해주고 싶지 않은 어린아이의 마음이 있다.
그 사람이 과거에 벌인 일들로 인해 받은 영향에 대해 무지했더라면 주저하지 않고 용서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 영향들이 내게 새긴 것들이 야속해 기약 없이 버틴다.
이렇듯 사람은 한 번 아이로 태어나게 되면 시간에 따라 외형만 변하고 내면은 아이로 살다 가는 법인 것이다.
원치 않아도 어린 시절의 내가 내 인생 전체를 좌지우지한다.
어른은 아이가 하는 말이라면 쩔쩔매지 못한다.
내면 아이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부정하면 할수록 저항은 거세지고 괴로움만 커진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알아챘다면 먼저 공감해주어야 한다.
그런 일을 겪으면 누구나 다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네가 옳다며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오로지 내면 아이가 준비되었을 때만 비로소 용서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몇 시간, 하루, 한 달, 일 년, 몇 년이 걸릴지라도 재촉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대다수는 감성이 아닌 이성을 통해 판단을 내리고 현실을 통제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내면 아이와의 소통을 어려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