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년은 왜 이렇게 낯설까
북콘서트.
아직도 내 입에 자연스럽게 붙지 않는 단어다.
책을 좋아하고, 바람 한 점이나 낙엽 하나에도 괜히 마음이 기울어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적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한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일은 늘 어렵다. 쓰고 싶다는 마음과 실제로 쓰는 일 사이에는, 생각보다 깊은 골이 있다.
내가 처음 글을 쓰고 싶다고 느꼈던 순간은 또렷하다.
대남·대북 방송이 밤새 울려 퍼지던 최전방 전선, 보초를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오던 혹한의 겨울밤이었다. 그날 밤하늘의 달은 노랗지 않고 푸르렀다.
피곤함도 잊은 채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그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아 밤새 끙끙거리며 적어 내려갔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서툰 문장이지만, 그날의 감각만큼은 아직도 선명하다.
2014년, 나는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무작정 떠난 곳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그 길에서는 하루하루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었고, 그 기록들이 블로그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잘 쓰려 애쓰지 않았다. 다만 하루의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글쓰기 교실에 참여했고, 온라인 필사 모임에도 들어갔다.
재미있었고 분명 성장도 느꼈다. 다만 돌아보면 늘 내가 유일한 남자였다.
그 사실이 서서히 부담으로 다가왔고, 결국 나는 한 발 물러났다.
‘신중년’이라는 단어를 만난 것도 그 무렵이다.
5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강의. 반가웠지만, 그곳에서도 남성은 나 혼자인 듯했다.
열정적인 강의와 작가의 진심은 오래 기억에 남았지만, 고립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내가 난생처음 북콘서트에 참여했다.
더블와이파파 작가의 북콘서트. 장소는 교보생명빌딩 23층이었다.
익숙한 건물, 낯선 자리. 신중년의 외로움과 고립을 이야기하는 작가에게, 비록 작은 방식일지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과거 이 빌딩에서 함께 근무했던 옛 동료에게
행사 전 연락했다.
"같이 가볼래?"
혼자였다면 아마 신청조차 망설였을 자리였다.
북콘서트가 끝난 뒤, 우리는 건물 안에서 사진을 찍었다.
어색하게 서 있는 나를 보며 동료가 웃으며 말했다.
"이 나이 되면, 사진 찍을 때도 더 크게 움직여야 합니다."
반신반의하며 표정을 크게 쓰고 몸을 조금 과장해 다시 찍었다.
이상하게도 두 번째 사진이 훨씬 나았다.
사진뿐만 아니라, 그날의 기분도 조금은 달라졌다.
북콘서트장에서는 온라인으로만 알던 글벗들이 서로를 반갑게 불렀다.
나는 가장 뒷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행사는 잘 짜여 있었다. 신중년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가 된 이들의 이야기, 질문과 대화를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 "신중년은 나이가 아니라 태도"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왔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편이 자꾸 걸렸다.
사실 나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이미 여러 번 도전했고,
그만큼의 실패도 겪어본 나이에게
'도전'이라는 말은 여전히 같은 무게일까.
성취보다 실패의 기억이 더 또렷해진 시기,
다시 한 발을 내딛는 사람들은
어떤 태도로 그 아픔을 건너왔을까.
도전을 말하기 전에,
이미 무너졌던 순간들을 지나온 신중년들에게
작가는 어떤 말을 먼저 건네고 싶을까.
질문은 끝내 손을 들지 못한 채
내 자리에서만 맴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질문 덕분에
나는 그 자리에 더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행사가 끝난 뒤, 우리는 뒤풀이 자리에도 함께했다.
혼자였다면 그냥 돌아왔을 자리였다.
동반자가 있다는 이유로, 나는 조금 더 머물렀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문학소녀라는 말은 익숙한데, 문학소년은 왜 이렇게 낯선 걸까.
신중년 남성의 글쓰기는 여전히 혼자 견뎌야 할 시간이 많은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나이 들수록, 글에서도 삶에서도
조금은 더 크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혼자보다는 함께, 망설임보다는 한 걸음 더.
그날 북콘서트에서
나는 답 대신 질문 하나를 안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도 나를 글 앞에 앉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