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오늘,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를 오르며
수없이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안내서에는
동화 같은 마을을 만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그 문장 하나에 아침부터 마음이 설렜다.
기대를 안고 비아프랑카를 출발했지만,
순례는 그 어떤 동화보다 험난했다.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부르비아(Burbia) 강을 건너
뒤돌아본 마을은 참 예뻤다.
하지만 날씨는 점점 거세졌고
쉴 곳도 마땅치 않았다.
세 시간을 걸어 암바슴베스타스(Ambasmestas) 휴게소에 도착해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다.
허공에서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어느 순간 검은 점처럼 보이며
환영처럼 느껴진다.
이날은
키 180cm를 훌쩍 넘는
영국과 이탈리아 출신 의사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다.
뒷모습조차 든든한 이들과 나란히 걷다 보니
한때 172cm였던
나의 신장이 떠올랐다.
결혼 전,
아내에게 말한 내 신장은 172cm였다.
첫 아이를 낳고 171cm,
둘째 이후 170cm.
키가 줄 때마다
아내에게 수정 보고를 했던 이야기,
눈 내린 길 위에서
우리는 조용히 웃으며 걸었다.
에레리아스(Herrerias)에 들어섰을 때,
눈과 햇살이 겹친 풍경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도 잠시,
S자 곡선의 언덕이 시작되며
'오 세브레이로'의 가파른 고갯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시야는 점점 사라졌다.
폭설로
길 표지석이 보이지 않았다.
함께 걷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라는 감각이 밀려왔고,
한 발 한 발이
두려움이 되기 시작했다.
눈보라를 헤치고 도착한
마지막 마을, 라구나(Laguna).
사람 하나 없었고
작은 바는 굳게 닫혀 있었다.
눈에 덮인 표지석,
구분되지 않는 우회로,
무릎까지 차오른 눈,
그럼에도
전통 카미노 길을 따라 걸었다.
무릎까지 빠지며
한 시간을 더 갔고,
마침내 눈이
가슴까지 차오른 지점에서 멈췄다.
이건 아니다.
위험하다.
가던 길 되돌아 내려오는 길,
아침에 출발했던 친구들을 산 중턱에서 만났다.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뒤이어 두 명이 더 올라와 합류한다.
다섯 명이 된 우리는
함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열띤 토론을 해갔다.
결론은 하나였다.
눈 덮인 전통 카미노를
다시 찾아
함께 오른다였다.
서로 교대로 앞장을 서며
눈 덮인 길을 열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두 시간을 올라
마침내 오 세브레이로에 도착했다.
그 순간,
기적처럼 느껴졌다.
마을에 도착하고서도
시야는 흐렸다.
5~6미터 앞의 동료조차
눈보라에 보이지 않아
서로를 큰 소리로 불러야만 했다.
숙소 입구도
눈에 덮여 있었다.
그날 알게 된 사실 하나,
겨울의
라구나–오 세브레이로
전통 카미노에는
사실상 우회로가 없다.
지금 생각하면
에레리아스부터
차도를 이용했어야 했다.
"겨울에 전통 카미노로
오 세브레이로를 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은
그 문장을 몸으로 배운 날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마을.
중세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건물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곳 산타마리아 성당에는
이런 전설이 전해진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 날,
아무도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한 사제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신앙심 독실한 어느 농부가 눈보라를 뚫고 미사에 참석하였다 한다.
오만한 사제는 미사에 참석한 농부의 가난한 형색을 보며
기대했던 휴식이 어그러진 것에 대한 불만으로
형식적인 미사를 마치고 농부를 업신여기며 영성체를 주었다.
그 순간 사제가 농부에게 건넨 빵과 포도주가 살과 피로 변했다는 전설로
그 기적의 유물은 지금도 이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익숙하지 않은 몸짓으로
성당 앞에 섰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긴 것에,
함께 걸어준 사람들에게,
눈보라 속에서
길을 열어준 보이지 않는 손에,
그리고
아직 사람 속에 살아 있는
'기적'이라는 이름에
조용히 감사했다.
다음화.
제28화. 함께 오르는 길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