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단계(前段階, Pre-stage) 수집가

건강검진표

by 인생클래스

십여 년 전만 해도
‘전 단계’라는 말을 자주 듣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다.
건강검진만 받으면 꼭 따라오는 말이 됐다.

"고혈압 전 단계."
"당뇨 전 단계."
"치매 전 단계."


종합검진표의 두께는 해마다 두꺼워지고,
이젠 모든 항목에 '전 단계' 딱지가 붙는다.


마치 검진만 받으면 자동으로 출력되는
보너스 쿠폰 같다.


궁금하다.
다른 분들의 검진표는 어떤지.


의사는 상담 때마다 말한다.

"짜게 먹으면 고혈압 지름길."
"달달한 커피를 즐기면 당뇨 지름길."
"하루 종일 핸드폰만 보면 치매 지름길."


내가 즐겨하는 모든 일상이
전 단계로 이어지는 기묘한 세상이다.


2년 전엔 혈압 전 단계 스티커,
작년엔 당뇨 전 단계.


이런 속도라면 올해는 아마도
치매 전 단계까지 받을 차례다.


'전 단계 마일리지 제도'가 있다면
나는 이미 VIP 회원일 터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전 단계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뜻이다.


의사들은 말한다.

'생활습관만 조금 바꾸면,
질병은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 단계는 저주가 아니라 기회다.
경고등이 켜졌을 뿐,
엔진이 완전히 꺼진 건 아니니까.


생각해 보면 인생 자체가
전 단계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연애 전 단계,
결혼 전 단계,
은퇴 전 단계,
죽음 전 단계…


그리고 건강검진표에 등장하는
수많은 전 단계들.


중요한 건 결국 '지금'이다.
이 타이밍을 어떻게 쓰느냐.


오늘 아침에도 운동을 나섰다.

귀찮지만,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한 하루를 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운동을 마친 후 느끼는
그 묘한 행복감을, 나는 사랑한다.


"전 단계"는 완전한 질병이 아니다.

그저 위험 신호일뿐.
조심은 하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지금처럼 운동 후의 행복을 느끼며
오늘 하루를 변함없이 살아가는 것.


그게 내가 선택한
전 단계와의 동행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