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은 늘, 기억에서 시작된다

by 인생클래스

퇴근길의 나는 늘 바쁘다.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앞만 보고 걷는다.

청계천은 늘 그 옆에 있었지만, 멈춰 서서 바라본 적은 거의 없었다.


지난주 금요일, 청계천은 유난히 붐볐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의 발걸음은 느렸고, 물 위에는 빛이 떠 있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멈춰 서게 되었다.

버스는 어차피 정해진 시간마다 오는데,

나는 왜 늘 정해진 루틴만을 향해 걷고 있었을까.


청계천 위에는 등불이 떠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웃고, 천천히 걸었다.


퇴근길의 시간은 그렇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불빛을 바라보다 문득 진주가 떠올랐다.

진주 남강의 유등.

임진왜란의 밤, 군사 신호가 되었고

전사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강 위에 띄워졌던 등불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불빛들은 대부분 현대의 것이다. 하지만 그 뿌리는 오래된 기억 속에 있다.


서울 청계천의 빛은 현재이고,

진주 남강의 등불은 기억이다.


우리는 빛을 따라 시간을 건너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불빛은 단지 예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진주에서 시작된 마음이 오늘은 청계천 위에 떠 있고, 전쟁의 밤을 건너온 등불은

지금 이곳에서 평화로운 산책이 되었다.


그날 나는 버스를 늦게 탔다.

서너 대가 지나간 뒤였지만 괜찮았다.


버스는 다시 오고,

불빛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작은 빛으로,

어딘가에 닿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