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숲길에서
하루만 더 걸으면
이 길의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오늘은 마지막 숲길을 걸으며
자주 돌아보게 된다.
아쉬움과 미련 때문이기도 하고,
누군가 내 뒤에서
말없이 배웅하며 서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다.
차가 다니지 않던 오지 시골 마을이 고향이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도심으로 나와 자취를 시작했고, 주말에 시골집에 머물다
일요일 저녁이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십여 리, 4km 넘는 시골길을 걸어
작은 읍내로 나가 버스를 타야 했다.
마을 모퉁이를 돌아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이 숲길에서 자꾸 떠오른다.
진눈깨비가 퍼붓던 1월 초,
과연 800km를 걸을 수 있을까
흔들리는 눈빛으로
어둠 속을 걷기 시작했었다.
이제는
조금은 뿌옇게 엉킨 생각들을
의도적으로 하얗게 지워내려 애쓴다.
걷는 동안 힘들었던 것은
육체적 고통이나 환경의 어려움보다
내 안의 아픔이었다.
하지만 겨울이었기에,
사람이 적었기에,
홀로 걷는 시간이 길었기에
이 시간은
나 자신과 대화하며
내면을 들여다보는 축복이 되었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말보다,
아픔을 잊기 위해
애써 걸어왔던 시간이 있었기에
이제는 더 이상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기로 한다.
산티아고 도착 하루 전,
많은 이들이 의도적으로 머무는
대단한 규모의 숙소, 몬테디고조.
교황의 방문을 기념해
산티아고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걷는 이들을 위해 지어진 곳이라 한다.
걷는 이가 드문 겨울,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이곳의 고요한 계절을 말해준다.
숙소 등록을 하며
문득 오 세브레이로를 오르던 날 밤이 떠올랐다.
함께 걷던 외국 친구가
내 코골이 때문에 잠을 설쳤다던 이야기.
산티아고에 도착해
성 야고보를 만나기 전
작은 고백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숙소에서 만큼은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더니
담당자는 흔쾌히
다른 방을 배정해 주었다.
그날 밤,
스무 명이 넘는 걷는 이들이 도착했지만
여덟 명이 쓰는 방을
혼자 사용하는 호사를 누렸다.
이런 축복이 내릴 줄 알았다면
은행 대출 내역까지 고백
밤샘 기적이라도 일어나게 할 걸 하고
혼자 웃어본다.
어두운 밤,
숙소 뒤 언덕에 올랐다.
가까이 산티아고 시내의 불빛이 보였지만
내게 더 환하게 다가온 것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별들이었다.
앞으로의 삶에서는
도심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보다
오늘 밤 이 별빛처럼
조용하지만 분명한 빛으로
살아가고 싶다.
다음 호
33화. 도착했지만, 끝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