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옳고 너도 옳다

내 삶이 간단하지 않은 건 모두 이 생각 때문

by Allan

7년 전쯤 한국에서 개인적인 일로 심리상담사를 찾아갔다가 저에 대한 몇가지 검사를 하신다고 하기에 질문지에 답을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설명을 몇가지 들었는데, 오늘은 그 중에 한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 때 상담사 선생님께서 결과 중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저는 저에 대해서 '내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수치가 꾀 높은 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대부분의 높은 '내가 옳다' 점수가 나온 사람들은 그 반대 질문인 '상대방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수치가 낮게 나오는 편인데 저는 '상대방이 옳다'라는 점수가 '내가 옳다' 점수 못지 않게 높게 나왔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는 그동안 풀지 못한 저에 대한 미스테리 중 한부분의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 대한 이런 모습을 선생님께서 이렇게 수치로 말씀해주시기 전까지 저는 제 자신의 특정 모습에 가끔씩 혼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의 특성이 저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


현재 캐나다 약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저는 한국에서 약사로 일을 할때보다 약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 만족도가 높습니다. 캐나다 약사는 모든 종류의 백신 혹은 주사제를 투약할 수 있고, 환자가 약이 없고 담당의를 바로 볼 수 없다면 통상적으로 최대 3개월까지 약사 이름으로 약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6월 부터는 여드름,습진,구순포진과 같은 간단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약사가 처방약을 처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보다 많은 판단력과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캐나다 약사 시험을 칠 때, 다섯가지 윤리 강령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게 공부합니다. 그 중 제가 어려움이 아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은 이 두가지 입니다. 약사가 전문성으로 가지고 환자에게 이익이 된다면 어느 정도 강압성을 가져야 한다는 Patriachy와 약사는 환자 본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Autonomy입니다. 저의 '너도 옳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은 성향때문에, 제가 약국에서 환자들을 대할때는 그들의 자유의지를 많이 존중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어쩔 땐 카리스마 없이 환자들에게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약사가 판단할 일이 많아지는 캐나다에서는 하루에도 수십번 겪게 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나도 옳고 너도 옳다'의 태도는 많은 어려움을 줍니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와 어떤 문제를 두고 다른 시각으로 갈등이 생겼을 때, 저에게 있는 높은 '내가 옳다'라는 부분의 작동으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 의견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처음에는 저와 다른 본인 의견을 이야기 하다가 결국 저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할 때, 그것이 싸움을 끝내기 위함임이 느껴질 때는 제 뇌의 '너도 옳다'라는 부분이 상대방이 이제는 제 의견에 동의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너도 옳기' 때문에 너는 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 사람도 옳기 때문에 내 생각이 옳다라고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폭력으로 느껴집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제 친구는 "나는 남자친구가 내 생각대로 하자라고 했을 때, 그렇지~ 내가 맞고 넌 틀렸어" 라고 바로 받아들인다고 하였고 그 대답이 어찌나 쿨하게 들리던지 부러웠던 순간이 기억이 납니다. 의견을 조율해야 할 때, 내 의견을 접을 순 없고 그렇다고 상대방이 고맙게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하자고 해주어도 "아냐, 너도 옳은데 그럼 네 의견을 무시할수 없지"라며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저의 모습은 그럼, 뭐 어떻게 하자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 상담 테스트를 하기 전까지 왜 나는 약국에서 카리스마 있게 '아뇨, 이렇게 하세요'라고 단정적으로 말을 못하고, 가까운 관계에서도 상대방이 의견을 바꿔 내 의견에 따라준다고 하면 '고마워'하고 쿨하게 받아들이지 못할까라는 생각으로 자책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니 그동안의 제 행동들과 생각들이 이해가 되었고, 이제는 그런 내 모습을 인정하고 그런 내 모습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는 환자들의 말에 따라가는 내 모습이나, 내 의견은 바꾸기 싫고 상대방이 본인 생각 바꾸는 것도 싫고한 답없는 나를 보면 여전히 답답은 하지만 예전 만큼 좌절 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이고 그런 나를 내가 제일 먼저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러한 저의 성향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이러한 성향인 나와 어떻게 같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저의 영역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새 흔히 바운더리(boundary)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나만의 바운더리는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저는 '상대방도 옳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저에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 상대방의 의견에 대부분 따릅니다. 이것은 제가 배려심이 특별히 많아서도 아니고 제 뇌 회로가 '상대방이 옳다'라고 형성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방의 의견에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다 보면 가끔씩 상대방은 저의 배려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한 모든 관계에는 패턴이라는 것도 있어서 내가 항상 '오케이'라고 했던 상대방에게 문득 '노'라고 하기는 쉽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바운더리를 정확히 정해서 그 바운더리 근처 5센티까지 다가오는 느낌이 들면 '노'라고 반응합니다.


여기서 저에게 중요한 점은 바운더리에 올때까지 참는 것이 아니라 그 근처 5센티까지 입니다. 5센티라는 디테일 또한 저 스스로를 안 후에 만든 사항인데, 저는 내가 상처받고 난 후 상대방에게 내 상처에 대해서 알리는 걸 잘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잘한다는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너무 정색하지 않고 약간의 유머를 섞은' 말들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심각해지고 그 표현을 할때에는 이미 가슴이 두근거리고 목소리가 떨리는 등 이미 이러한 신체적인 반응으로 제 모습은 실제 제가 생각하는 심각함보다 2-3배는 더욱 심각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심각하게'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해서 상대방이 미안하다고 하는 그 아름다운 시나리오에도 '그래, 알겠어'하고 툭툭 털어내는 성향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저입니다. 따라서 제 바운더리가 건드려졌을 때 어떻게 되는지 아는 저는 제 바운더리를 진심으로 보호합니다. 아직은 내 바운더리가 안 건들여졌지만 이 사람의 행동이나 말이 내 바운더리 5센티까지 가까이 왔을 때 저는 아직은 진정한 가슴과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상대방에게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평소에 저는 이사람이 나에게 하는 이런 행동이나 말들이 내 바운더리 어디까지 쯤 와있는지 인식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합니다. 마침내 이러한 습관이 내 것이 되고 나니 과거의 저보다 세상을 사는 것이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또한 내 바운더리 근처에 다가 오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진심으로 배려심 있게 대하는 자유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제가 약국에서 하루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직접 혹은 전화로 만나면서도 제 일을 사랑하는 비결인 것도 같습니다.


저는 이제 나도 옳고 너도 옳다라고 생각하는 제 자신을 마음 껏 사랑합니다. 아직도 가끔씩 힘든 순간들을 주기도 하지만, 내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자기 확신이 있는 내 모습이 좋고, 더불어 상대방도 옳다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제 뇌 회로가 참 사랑스럽다고 느껴집니다. 이렇게 내 모습에 대해 잘 알고 그 모습을 사랑하게 되면서 나에게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 하나 있는데, 이제는 내 바운더리를 침범하도록 내가 허락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나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특별한 상황에서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내가, 나의 의지로 허락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운더리가 침범이 되어도 내 컨트롤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러한 저의 모습은 살면서 매우 드물게 나타나지만, 그렇게 매우 드물기에 이러한 경험은 저에게 매우 소중합니다. 저는 끊임없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 변하려고 노력하는 제 안의 움직임과 유연성을 언제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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