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가질수는 없다

민머리 내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

by Allan

저는 지금 캐나다에서 5년째 생활하고 있습니다. 허니문 기간이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 반대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캐나다에 와서 처음 몇년은 영어와 문화라는 장벽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힘들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캐나다에서 적응해 내리라'라는 마음가짐으로 달려온 것 같고, 4년쯤 되자 (즉, 살만해지자) 많은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캐나다 생활 2년차쯤 어느 날 문득 '아니, 내가 캐나다에서 살면 평생 이제는 가족들을 일년에도 한번도 보기 힘들다고?'라는 생각으로 현타가 온적이 있긴 했었습니다.


작년에 드디어 내가 계속 캐나다에서의 삶을 살지, 아니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지를 늦기전에 결단을 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을 다시 생각해본 건 오로지 가족들과 사랑하는 친구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과연 캐나다에서 힘들게 일궈온 내 삶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갈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다시 약사로 일하는 것은 생각해볼 수 도 없을만큼 캐나다에서의 제 일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고, 너무 많은 인종과 문화로 다양성을 인정해야만 하는 사회분위기와 제가 종종 캐나다를 일컬어 부르는 '벌레 없는 시골'같은 자연환경도 제겐 너무 잘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캐나다에서의 이 모든 생활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리 떠나서 지낼 만큼 중요할까 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해지는 때가 빈번해지기 시작한 작년, 저는 한국에 우선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처음 생각은 제가 2018년 캐나다에 처음 올 때 '여기서 반드시 살겠다'라는 마음으로 오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왔듯이, 더 늦어지기 전에 다시 한국으로 가서 다시 한국에서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든 이어지면 그리고 가족, 친구들과 함께 인것이 너무 좋으면 내가 다시 한국에 머물게 될것이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가끔 스스로 도무지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때 제가 쓰는 방법입니다.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지 않고, 몸에 힘을 빼고 인생이 나를 이끄는 대로 흘러가기..


그렇게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조카의 책장에서 이솝우화라는 책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솝우화'라고 이야기들은 몇개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 드렸듯이 저는 어렸을 때 책을 정말 안 읽었기 때문에 조카의 책장에서 보통 어린이들이 읽는 유명한 책들이 보이면 일부러 꺼내서 읽는 편입니다. 마치 어렸을 때 미처 못 맞은 예방주사를 어른이 되서 맞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책을 읽던 중에 그 당시 제 마음에 확 꽃히는 이야기를 읽게 되었고, 이렇게 저는 '역시 내가 읽을 다음 책은 하늘이 점지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굳히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어떤 남자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랑 많은 여자 두명을 애인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어린 애인를 만나면 그 여자가 남자의 흰머리가 나이들어 보여 보기 싫어 흰머리를 뽑아 버렸고, 본인보다 나이 많은 애인을 만나면 그 애인은 남자가 더 어려보이는 것이 싫어 검은 머리를 뽑았습니다. 이렇게 두 애인을 계속 만나다 보니 이 남자는 결국 대머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렇게 대머리가 되었답니다'라는 결론을 읽고는 도대체 이게 뭔가 하는 헛웃음을 터트렸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저는 제가 캐나다에서는 한국 생각을 하고, 한국에서는 캐나다 생각을 하고 살면서 제 인생은 '대머리'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읽은 책 내용중에, 내가 서있는 '여기'는 항상 지루하고 '저기'가 흥미로워 보입니다. 그래서 힘들게 '저기'를 가면 그 저기가 다시 '여기'가 되어 지루해지고, 내가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여기가 이제는 '저기'가 되어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미 이러한 내용을 책으로 읽고 그 당시 마음에 와닿아서 계속 간직하고 있던 구절이지만, 가끔씩은 그런 좋은 구절과 내 실제 인생이 만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그 이솝우화에서 그남자는 대머리가 되었다는 그 일차원적인 이야기를 듣자 내가 계속 이렇게 왔다갔다 하면 내 인생도 '대머리'가 되어 가겠구나라는 자각이 확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책에서 읽었지만 마침 연결을 못 시키고 그저 내 마음속 한 부분에 있었던 그 구절도 지원군으로 나서서 저의 이런 자각을 더 확실하게 해줍니다. 나와 잘 맞는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나에게 매우 와 닿았던 그 구절은 내 가슴 한구석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쁜 현실을 살다보면 좁아진 시야와 다급해진 마음때문에 이런 구절들이 잊혀진 듯 하지만 내가 또 깨달음을 얻는 순간 다시 나에게 다가와줍니다.


그래서 내 인생을 이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결국 대머리로 만들어서는 안되겠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생각을 잘 해보니, 지금 현재 내가 더 행복한 캐나다에서 우선 더 잘 살아 보아야겠다라는 결심이 어렵지 않게 섰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사실 저는 캐나다로 다시 돌아올 생각을 이미 하고 한국으로 갔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갈 때 사실은 다시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캐나다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리고 그만둔다고 이야기 했을 때 직장에서 니가 한국에서 지내기로 마음 먹었다면 할 수 없지만 캐나다로 온다면 얼마든지 기다리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저도 '알겠다'라고 대답하고 그 직장을 그만두지 않은 채 한국으로 돌아갔었습니다. 이미 나는 캐나다에서의 삶이 더 편한데,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곳을 떠나 혼자라는 사실이 가끔씩 힘들게 다가왔던것 같습니다. 대머리 이솝우화를 읽는 순간 내가 여기서 능동적으로 결정을 하지 않으면 불쌍한 내 인생 대머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캐나다에서 더 살아보겠다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소심하게 우선 앞으로 5년은 더 살아보겠다라는 결심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지는 것이 두려운 또 다른 제 자신을 안심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읽은 또 다른 책에서 '내 눈앞에 보이는 목표가 너무 거대해서 엄두가 안나면 그 목표를 보지 말고 그냥 내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내 눈앞의 일들만 하나씩 하다 보면 그 거대한 목표에 한발자국씩 다가가고 있는 것이라고..


제 인생 처음으로 노르웨이로 자동차 여행을 갔는데, 제가 노르웨이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사진 한장 때문이었습니다. 두 절벽 사이에 끼어있는 아찔한 바위사진으로 유명한 쉐락볼튼(Kjeragbolten)입니다. 예정대로라면 노르웨이 도착해서 4-5시간을 운전해서 가서 당일에 등산을 하는 코스였습니다. 운전하고 오는 날 이런저런 이유로 조금 씩 늦어지다보니 도착한 시간은 예정보다 몇시간 지난 늦은 오후였고, 바위 사진에 너무 흥분해서 제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은 이 등산로는 바위가 대부분이고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세 꼭대기를 넘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 눈앞에 보이는 첫번째 산이 80%가 바위인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등산이면 저보다 더 자신있어 하시는 어머니께서 본인은 가지 않겠다, 바위가 위험해 보인다라고 하시며 가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이였습니다.


그 당시에 저 구절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내가 노르웨이에 온 이유는 이 등산로 때문이고, 내 눈앞에 한발자국씩만 가보자 그리고 정 안될 것 같을 정도로 위험하다 느껴지면 깔끔히 내려오자. 그렇게 저는 산을 오르며 아무리 내 눈앞에 거대해보여도 내가 내 딛는 한발 한발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였고, 마침내 제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절벽에 끼어있는 바위에 도착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바위로 올라가는 그 마지막 몇 발자국이 너무 무서워서 저는 꿈에 그리던 그 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지 못한것은 비밀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바위를 제눈으로 직접 보았다는 사실에 지금도 마음이 뿌듯합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다시 내려오는 동안은 물도 부족하고, 날은 어두워지고, 내려가는 길도 잘 모르겠어서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그 바위를 직접 보고 온것은 저에게 있어서 너무 큰 경험이었고, 그리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제가 그 바위를 보고 올수 있게 되었는지는 저에게 더욱 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무언가 거대한 것에 압도된 느낌이 들 때, 그저 한 발자국씩만 내 딛기로 합니다. 그래서 저는 '평생 캐나다에서 산다'라는 생각이 저를 압도할 때, 그저 지금부터 5년은 캐나다에서 더 살아보자 라고 저를 다독입니다.


KakaoTalk_20230901_140201977.jpg 2014년 노르웨이 쉐락볼튼에서 차마 바위에는 올라가지 못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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