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미 이루어졌다.
며칠간 고요하고 게으른 시간을 보냈다. 죄책감은 멀리 던져 버리고 먹고 뒹구는 시간들이 얼마나 좋았던지. 사실 아무도 나에게 게을렀다고 말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나를 조이는 버릇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놔주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그래봤자 나는 지금 쉬고 싶다. 하는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복잡한 생각을 따라 우왕좌왕 움직이던 몸과 마음을 가만히 두고 싶어졌다. 게다가 둘째를 낳고 몸무게가 8kg이나 불었기 때문에 생각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다.
아무튼 버려야할 쓰레기와 빨랫감을 서서히 처리할 때가 왔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하나씩 정리를 해나간다. 설거지를 하다 보니 때에 전 행주가 보인다.
“아. 행주 삶아야지.”
폭폭 삶은 행주를 일일이 헹궈 본다. 헹굼은 세탁기에 맡기는 대신 직접 해보기로 했다. 찰랑이는 물소리와 손놀림이 기분을 좋게 한다. 어쩐 일인지 해야 할 일을 빨리 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뽀득거리는 행주를 꼭 짜서 건조대에 널어놓으니 밀린 집안일도 밀린 작업도 밀린 약간의 일거리도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시원하게 잘 마르기만 하면 되니까. 어쨌든 하기만 하면 되니까.
대학교 졸업 후 나도 여느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직장을 고민하고 장래를 걱정했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만족스런 월급을 택할 것인지 화가로 살아갈 것인지. 2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 많은 질문들을 하면서 말이다. 대학생 때부터 알바를 하던 아동미술학원을 결혼하고 첫아이를 임신해 입덧으로 정신을 못 차릴 때까지 다니게 되었다. 언제까지 미술학원에서 그 만큼만 벌고 말거냐는 선배의 불편한 조언을 듣기도 했지만 나는 계속 미술을 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괜찮았다. 얼마간의 생활비를 벌면서 내 시간을 넉넉하게 쓸 수 있었고 그런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겁이 많고 애 엄마가 되서도 낯가리며 수줍어하는 내가 유일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었던 미술이라는 분야. 사실 여태껏 그려온 그림의 수는 많지 않다. 미술교육도 화려한 경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키운다는 핑계로 그림을 마주하는 시간을 외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손에 잡히기만 하면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누군가와 수다를 실컷 떤 것 같은 재미있고 후련한 기분. 그리고 나의 존재감. 평론가와 대중을 만족시키는 화가가 된다면 싫을 것도 없겠지만 내가 만족하는 것이 먼저라는 고집을 부린지 오래다. 그러면서도 조금씩 사람들과 소통하길 바라는 수줍은 예술가라고 스스로 불러본다. 멍 때리기를 진심 좋아하고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때론 현실감 뒤떨어지는 사람이지만 여태껏 나의 예술세계를 이어 왔다는 것만으로 내가 살아온 줄거리를 누군가에게 이야기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전 같으면 행주를 삶는 날 기분이 좋지 않을 확률이 컸다. 아이들이 아기였던 시절에는 체력이 늘 바닥난 상태로 살았다. 좋아 하는 것도 하기 어려운 마당에 끝도 없는 집안 일 이라니.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화가라는 어린시절의 꿈을 이루고도 기뻐하지 않았던 시간들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 힘든 것처럼 나의 일상에서 맞이할 수 있는 기쁨을 발견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서른아홉. 이제야 그것이 나의 것임을 알았다. 또 글쓰기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에 기뻐하며 이 공간에 하나하나 나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