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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달그 Oct 08. 2021

마음을 달래는 그림

그림정원


그림정원 시리즈는 올 초여름 전시를 앞두고 시작되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기르는 식물들이 그림에 등장한 것은 몇 년 전부터다. 대부분 조연과 같은 역할로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주인공으로 나섰다. 


나의 작업은 줄곧 자아 찾기의 연속이었다. 학생 때는 내가 뭘 그리는지 몰라서, 결혼 후에는 아이들 키우는 게 너무 힘이 들어서,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니 내가 나 때문에 힘들어서 어떻게든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림이었고 아이들을 돌보며 조금씩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자아, 식물, 결혼, 아이들이라는 소재를 자연과 함께 표현한 것이 내 그림의 패턴이다. 이 단어들 안에 있는 수많은 경험들에서 영감을 얻는다. 작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이미지는  산책을 할 때나 아이들과 놀 때 찍어둔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쓰일 자료가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오래도록 보관해둔다. 그러면 정말 필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림정원/캔버스에 아크릴릭/2021

그림정원에는 식물만이 있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주의의 평가에 눈치를 보고  작품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마음껏 표현하지 못한 것이 답답했다. 이번에는 다 내 맘대로 할 거라며 소소한 반항을 해 보았다. 특별한 장치나 구도를 잡지 않고 내가 저 식물들 속을 거닌다는 느낌으로 그려나갔다. 식물 기르기는 그림 못지않은 치유 효과가 있었으므로 충분히 그럴만했다.  당시 날이 더워지고 있어 베란다에 있는 식물의 푸르름을 한껏 담고 싶었다. 

  

새로 시작한 그림이 이전의 작품과 어떤 차이가 있든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현재의 작업은 과거의 것과 연결되어 있다. 과정 하나하나 작품 하나하나 나에게는 버릴 것이 없다. 나의 모든 감정과 시간들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한평한평시리즈/2019~2020/종이에아크릴릭

나는 나의 그림을 “마음을 달래는 그림”이라 부르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마음의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한 번의 붓질로 하나의 그림으로 모든 묵은 감정을 다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평생 이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는 대신 그림을 그리며 경험 했던 따뜻한 것들을 나누고 싶다. 또한 살아가며 겪는 어려움에도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림을 못 그리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것만은 꼭 지키고 싶다. 

 

결국 내가 작품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논리와 철학을 갖춘 내용이 아니라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따뜻함에 관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첫아이를 낳고 2년 동안 작업을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남편의 권유로 다시 붓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망설이는 나에게 남편은 "너에게 가장 가까운 것부터 해봐" 라고 말해주었다. 


식물 드로잉/2020- 복잡해 보이는 식물을 그리기 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가벼운 드로잉을 통해 알아본다. 그런 나의 태도에 웃음이 난다^^

바로 이거였다. 남편과 연애를 하던 대학생 때도 똑 같이 이 말을 해주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 때 나에게 가까운 것이 무얼까 생각을 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나에게 제일 가까운 나로부터 출발하기로 했었다. 그 당시의 그림풍과 지금은 완전히 다르지만 나는 여전히 나에 대한 것들로 작업을 하고 있다. 


한 때는 예술가라면 뭔가 특별한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이나 주제를 멀리서 가져오려고 애썼다.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현재는 그림 그리기가 무척 어렵고 두려워 지는 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핑계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많은 양의 그림을 그리지는 못한다. 가정을 돌보며 꿈도 지켜야하기에 항상 조화로운 방법을 택하게 된다. 


무엇을 그리느냐가 중요한 시간이 있었고 어떻게 그리느냐가 화두인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로 마음의 가장 큰 위로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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