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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웜스 Aug 31. 2024

진짜 진짜 게으른 사람

노곤함을 사랑하는 노을 사냥꾼

_인생 색감 보정 프로젝트 #7 진짜 진짜 게으른 사람




내가 봐도 나는 진짜 게으르다. 해야 할 일을 발등에 불붙기 전.. 도 아니고 진짜 지금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져 생존에 위협을 받을 때까지 미룬다. 그뿐만인가. 내 방, 내 구역은 난장판에 돼지우리 그 자체다. 동생들이 지나다니면서 쓰레기를 몰래 책상에 올려놔도 한참 지나서야 알아채고 뒤늦게 극대노한다. 정리정돈 얘기는 후에 따로 다루겠다.


사실 학창 시절에는 몰랐다. 학창 시절 난 완전 모범생, 성실걸, 유교걸 이미지였다. 해야 할 일이 확실하고 주변에서 내게 거는 기대가 눈에 보일 때 나는 스스로를 잘 통제하고 관리했다. 하지만 내 맘대로, 온전히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태한 대학생 생활 이 시작되자 나는 진짜 내 천성이 어떤 지를 여실 없이 알 수 있었다. 고요한 시간 속 게으른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해방촌 노을


대체로 게으른 사람들은 성격이 급해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나만 그럴 수도 있지만 알 수 없는 근자감에 늘 휩싸여 있다. 시간이 임박해도 어찌어찌 급하게 마무리해서 잘 해낼 나를 믿기 때문에 끝없이 미루는 것이다. 또 그런 일처리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일을 안 할 때 노곤노곤함과 나른함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일을 할 때는 누구보다 정신없고 바쁘지만 나머지 시간은 세상 태평하게 늘어져 있는 오후 낮잠시간 같은 노곤함이 좋다.


이러한 일처리 방식이 인생에 언젠가 한 번은 큰 실수가 되어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과 마감직전에 급하게 써내는 것. 인생을 멀리 봤을 때 나에게 전자는 비효율적인 것이 아닌 느리더라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이었다. 조금씩철이 들었던 것 같다.


방화수류정 노을


미미하게 변화하기 시작했지만, 나의 노곤노곤 사랑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라도 애정하는 느낌을 누리기 위해 나는 노을을 온전히 즐기기 시작했다. 노을이 질 때는 시간이 마치 멈춘 듯고요하다. 세상 전체에 따뜻함 필터가 씌워지는 나른한 시간대.


노을이 예쁜 날에는 평소 시크한 눈빛으로 걸어 다니는 한국 사람들도 약간은 아련한(?) 눈빛을 지으며 노을을 감상하고 여기저기서 찰칵 소리가 들린다. 가장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시간대이자 낭만적인 시간대라고 생각한다.


영동대교 노을


한강 대교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것도 참 애틋하다. 완둥완둥 (2화 참고) 형제 과외를 하러 가는 길에는 카메라를 가방에 챙겨 일부러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갔다. 바람이 많이 불어 머리는 이미 번개맨이 되어있고, 말썽쟁이들 과외하러 가기는 싫고, 퇴근하는 차들이 부러웠지만 이 모든 현실 속 감정이 노을을 보면 잠시 게을러진다. 감정도 게을러지는 순간이 필요한 듯하다.


감정이 게을러지며 세상에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느낌만이 온전히 남는다. 그 나른함을, 노곤노곤함을 사랑한다.


노들섬 노을


많은 노을 명소가 있지만 가장 노을이 예쁠 때는 뜻밖의 순간에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다. 예기치 못한 노을은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주고 그 온기는 저녁을식사를 더 야무지게 먹게 해 준다.


밥맛을 돋우고,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스럽게 보이게 해 주고, 세상 전체에 노랑빛을 씌워 사람 나는 냄새가 폴폴 나는, 나른하고 노곤한 시간대. 노을.




*노을 사냥꾼의 서울 노을 명소 추천
(사실 노을이 예쁜 날엔 어디든 좋지만 노을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켜 주는 장소들!)

1. 강변역 테크노마트 옥상 하늘공원
2. 해방촌
3. 노들섬
4. 한강 대교 (본문 속 영동대교도 좋습니다)
5. 창신동 산마루 놀이터 골목 (노란빛 건물들이 많아서 골목이 아름다워요)
6. 올림픽공원 나 홀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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