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백만 우려 홀짝홀짝
_내 인생 색감보정 프로젝트 #5 깊이 있는 취향이 없는
이상형이 뭐야?
라고 물으면 취향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잘 알기에 늘 확신해 차있는 듯한 눈빛을 가진 사람을 좋아했다. 취향,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은 확실히 매력 있다. 자신이 뭘 좋아하고,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잘 어울리는 지를 알기 때문에 더 빛나 보인다.
나랑 반대라서 매력을 느끼는 걸까. 사실 난 취향이 확실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사람들이 진하게 사골 국물을 우려먹는다고 하면, 나는 티백으로 향만 내서 홀짝홀짝 여러 잔을 마시는 타입이다. 한 가지를 깊이 있게 파고들지를 못한다. 매번 이거 해보다가 저거 해보기 십상이고, 그래서 쉽게 도전하고 시작하지만 또 쉽게 관둔다. 일이나 사람에게 쉽게 호감을 가지고 좋아하지만, 그만큼 쉽게 질리기도 한다.
되돌아보면 학창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다. 한 과목만 깊게 좋아해서 대학 전공까지 그쪽으로 살려 졸업하는 친구도 있는 반면, 나는 늘 모든 분야가 그저 그랬다.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고 늘 미지근한 호감의 상태.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는 나는 집에서 학교까지 편도 꼬박 두 시간이 걸린다. 왕복 네 시간을 땅바닥에 매일 버리는 기분은 처음엔 정말 '불호' '극혐'이었다. 그러다가 이런 통학 시간도 나중에 그리워하게 될 날들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통학하기 시작했다. 평소 잔뜩 찡그린 얼굴로 의자에 기대 잠만 자고 핸드폰만 하기 바빴던 나였지만 조금의 변화와 호감으로 시작된 나의 일상은 평소와는 달랐다.
버스 창가에 앉아 창문을 열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봄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세수시켜 주고,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상상을 하게 했다. 기분이 엄청 좋았다. 버스에서 멍 때리는 시간을 또 쉽게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은 버스 타는 걸 너무 좋아해서 가끔 생각이 복잡할 때 버스를 타고 맨 앞자리에 앉아 삥 돌고 다시 집에 오기도 한다. 찻잎처럼 적은 양의 호감이 어느새 은은하게 퍼져 잔잔히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깊이 있는 취향을 가진 사람도 좋고, 세상에 쉽게 사랑에 빠지고 어지간하면 받아들이는 성격도 좋다. 호불호가 강했다면 철벽을 쳤을 일들도 뜻밖에 행복을 가져다주었고, 마음을 여유롭고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도 매력 있고 빛나지만, 미지근한 온도의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은은히 빛난다.
잔잔하고 미지근한 삶. 그 정도의 삶의 온도가 얼마나 감사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