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맛있는 음식만 드셨으면 좋겠어
인생 색감보정 프로젝트 #6 이상한 포인트에서 우는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감동적인 선물을 받았을 때,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눈물이 좀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할수록 눈물은 더 메말라서 당황스럽다. 꼭 필요할 때 원망스러울 정도로 안 나오는 눈물이 지만 사람마다 조금은 이상한 포인트에서 눈물샘이 터져 버리곤 한다. 각자 마음에서 가장 껍질이 얇고 여린 부분, 감성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나는 할머니가 맛없는 음식을 드실 때 가장 눈물이 난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7명의 손녀들 중 맏손녀인 나는 ‘7공주 대빵’이라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할머니께서는 어떻게 7명이 다 여자냐고 가끔 아쉬운 소리를 하시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애정 어린 사랑과 걱정은 늘 넘치도록 받으며 자랐다. 대학생이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혼자 할머니 댁에 내려가 방학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저 멀리 경상남도에 사시는 할머니 댁에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리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래전부터 나와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지 마시라 해도 혹시나 내가 기다릴까 봐 걱정되신단다.
여유로운 오후, 할머니가 점심으로 파스타를 해주신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이태리 음식은 잘 접해보지를 않으셔서 서투시다. 조금 통통하게 불은 파스타면에 참치캔과 토마토소스를 넣어 만드신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서 집에 계실 때 자주 참치캔 파스타를 해드신다고 하셨다. 그 파스타를 한입 먹어보니 솔직히 말하면 정말 맛이 없었다. 그리고 뜬금없게도 내 눈가는 촉촉해졌다. 내가 잘 먹으니까 할머니가 참치캔을 집에 가져가서 파스타에 넣어 먹으라고 그러셨다. 우리 집에 참치캔이 많이 없는 줄 아시는 할머니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언제까지 내가 서툴지만 따뜻함이 넘치게 담긴 할머니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을까. 할머니는 어릴 때 그대로 여기 계셨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 수록 나는 조급해졌고 슬퍼졌다.
할머니가 후식으로는 도넛을 가져오셨다. 시장에서 도넛을 사서 자주 드신다며 맛있다고 하셨다. 엄청 퍽퍽했다. 또 눈물이 고였다. 나는 노티드 도넛과 런던 베이글 집에서 부드럽고 맛있는 빵 맨날 사 먹는데 , 나는 할머니 없어도 맛있는 음식 잔뜩 먹고사는데 나만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할머니께 미안했다. 할머니는 아프신 다리에도 내가 집에 있는 날에는 부엌에 종일 서서 늘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해주신다는 게.. 할머니의 사랑에 벅차오르도록 감사해졌다.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의 가치를 가늠할 수도 없었다. 이 음식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하나뿐인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이니까. 할머니 음식은 배 터질 때까지 먹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밥에 진심이다. 할머니가 사시는 동안 맛있는 음식만 드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먹고 남긴 밥, 밥솥 마지막에 긁은 밥 말고 따뜻해서 델 거 같은 뜨끈한 밥과 국을 드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 말고 할머니가 진짜 좋아하시는 음식을 많이 드셨으면 좋겠고, 할머니가 잘 드시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너무 많이는 말고 적당히 행복하게 드시면 좋겠다.
소중한 사람을 아끼는 마음은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표출되곤 한다. 상대가 따뜻한 밥을 먹고 편안한 잠자리에서 그저 평안히 지냈으면 하는 것. 맨날 라면을 먹으면 할머니가 세상 안쓰러워 하시며 온갖 반찬을 다 해놓으시는 것처럼, 손녀는 할머니가 퍽퍽한 도넛을 드시면 근처 유명 베이커리의 부드러운 빵을 검색해 잔뜩 담아온다. 각자 인생이 벅차 눈물이 메말랐더라도 사람은 사람 간의 걱정과 눈물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으로 먹고 산다.
나는 할머니가 맛없는 음식을 드시면 눈물이 나온다.
집에 돌아와서도 엄마 앞에서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나 울었다. 엄마가 왜 우냐고 물었는데, 도넛 때문에 운다고 하면 이상해 보일까 봐 말을 아꼈다. 그냥 할머니 생각이 나서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