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웜스 Oct 07. 2024

시장 도넛과 노티드 도넛

 

 할머니는 달콤한 디저트를 잘 드신다. 어릴 때 '단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라는 얘기를 어른들로부터 줄곧 듣고 살아서 그런지 그런 말을 하는 당사자들은 달콤한 간식을 안 좋아할 줄 알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도 달콤한 간식이 있으면 손녀들 주기 바쁘셨지 당신이 드시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 느낀 것은 아이들보다 단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할머니들이라는 것.

할머니는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빵 종류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 어느 날은 시장에서 도넛을 사 오셔서 밥을 드시고 맛있게 드시더라. 하얀색 가루가 묻은 빵이었는데 특별한 맛은 아니고 그저 당충전용으로 먹기에 제격인 착한 가격의 도넛이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도넛이었지만 난 그 도넛을 한 입 먹어보고 나서 조금은 울적해졌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은 다들 '빵순이'가 되어가고 있다. 예전만 해도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 '빵순이'들은 상당히 전문적이다. 밥 대신에 유명 베이커리의 베이글을 줄 서서 먹고 부드러운 크림이 들어간 도넛은 유명세를 타서 가게에서 나오는 사람마다 두 손 가득 도넛 봉지를 들고 나온다. 집 주변에 그 가게가 있어 먹어보았는데 왜 유명한지는 알 것 같다. 평소 도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임에도 퐁신한 빵 안에 그리 달지 않은 고급진 크림은 먹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었다. 그런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도넛만 먹다가 할머니가 사 오신 시장 도넛을 먹으니 퍽퍽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애정하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연민의 마음이 크다. 그저 남의 일이라 여기며 무심해지지 않고 별거 아닌 일에 마음이 계속 쓰이고 때론 슬퍼진다. 특히 밥에 진심인 우리나라 민족은 밥과 끼니를 걱정하고 안쓰러워하며 서로 애정을 표한다. 손녀가 바빠서 밥을 못 먹었다는 말에 세상 슬퍼하시며 가장 마음 쓰여하시는 할머니처럼. 대충 끼니를 때우며 정신없이 보냈던 하루라도 내 끼니를 나 대신 걱정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음을 느끼는 순간 마음이 녹아내린다. 걱정하는 사람이 누구보다 많은 할머니지만 정작 할머니의 끼니를 살피는 사람은 적기에 할머니가 한 끼라도 맛있게 드셨으면 하는 바람이 늘 마음속에 자리한다. 할머니가 맛없는 음식을 드실 때 나는 가장 슬프다. 

 할머니가 손녀들이 먹고 남긴 밥을 끝까지 긁어 드실 때, 식사 준비를 하시느라 마지막에 상에 앉아 조금 식은 밥을 드실 때, 맛있다며 드시는 도넛이 내겐 너무 퍽퍽했을 때 애정이 담긴 슬픔의 감정을 느꼈다. 할머니가 사시는 동안 맛있는 음식만 드셨으면할머니 댁에서 지내는 동안 느꼈던 이 묘한 울적한 감정을 정의 내릴 수 없었는데 다시 서울에 올라가 엄마 앞에서 할머니 얘기를 할 때 그 감정을 깨달았다.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 엄마는 할머니와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하셨겠지만 별 다른 일은 없었다. 그냥 그 도넛 때문이었다. 




이전 05화 할머니의 참치캔 스파게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