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내 손을 잡아보시고는 손이 어쩜 그렇게 예쁘냐고 말씀하셨다. 어릴 때는 작고 통통한 단풍잎 같은 내 손이 뭐가 그렇게 예쁘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됐었다. 내 손은 짧고 뭉툭할 뿐만 아니라 촉촉한 걸 넘어서 축축하다. 다한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한증은 혼자 있을 때 힘든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잘해보고 싶을 때 훼방을 놓는 놈이라 밉다.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두렵다. 혹시나 악수하자고 할까 봐, 손을 맞대고 파이팅 하자고 할까 봐.
언제부터 다한증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다한증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만 몇 가지 군데군데 머리에 남아있다. 다한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두려운 시간이 아마 수련회 레크리에이션 시간일 거다. 눈 맞추고 손 맞대고 서로 몸을 의지하는 시간에 어떤 게임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한증이 무서운 게 의식하지 않고 있으면 건조했던 손이 '어? 손이 건조하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촉촉해진다. 5초 내에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입니다!" 하는 순간 건조했던 내 손이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혹여나 옆에 손잡은 친구가 놀랄까 봐 신경 쓰였고, 땀이 많이 나서 더럽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 예상대로 손 잡고 활동하는 게임이 많았고 나는 우리 팀이 이겨서 게임을 계속하기보다 얼른 이 손잡는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최대한 손에 집중하지 않고 평온하게 명상하듯이 게임에 임했고, 결국 친구의 "너 손에 땀이 왜 이렇게 많이 나?"라는 말을 듣지 않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손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과 자유롭게 손을 잡을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장난으로 더럽다고 소리를 들었을 때 큰 상처가 되었던 내 손은 할머니 앞에서 그저 귀엽고 통통한 손이 되었다. 할머니 손은 평생 물을 많이 만지고 사셔서 건조하다. 그 건조함 속에서 축축한 나는 설명하지 못할 편안함을 느꼈고 서로의 아픔을 공감해 줄 수 있었다. 남들에게 축축하고 찝찝할 수 있는 손이 할머니에게는 촉촉하고 탱글한 손이었고, 할머니의 건조하고 갈라진 손은 나에게 마음껏 잡을 수 있는 편안한 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