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좋아하는 돼지국밥 집에 밥 먹으러 갈까?”
들을 때마다 따뜻해지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집 근처에 있는 24시 돼지국밥집을 자주 갔다.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돼지국밥을 한 그릇 시켜서 소면두덩이, 양념장과 정구지 (부추의 방언)를 잔뜩 넣어 한 그릇 뚝딱 해치웠었다. 손녀가 국밥을 야무지게 잘 먹는 게,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그게 큰 행복이셨나 보다. 할머니 앞에서는 돼지국밥을 잘 먹는 게 나의 가장 큰 장점이 된 것만 같았다.
고속버스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돼지국밥 집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끝내 생각이 안 나 찝찝할 것만 같은 종업원분들과 연령대가 천차만별인 손님들로 가게 안은 가득하다. 입구에는 거대한 가마솥에 돼지국밥이 펄펄 끓고 있고, '저희 집에서는 건더기는 남기셔도 국물은 끝까지 드십시오. 국물이 보약입니다.'라고 적힌 문구가 왠지 모르게 비장하게 느껴진다. 저 문구를 줄곧 보고 자란 나는 국물 마니아가 되어 늘 붓기를 달고 사는 어른이 되었다.
국밥집은 어떤 음식점보다도 한국 그 자체의 맛과 향이 나는 식당이다. 진득하고 구수한 액체 냄새가 난다. 아저씨들이 땀을 닦으며 “아흐~” 하시는 모습, 대학생들이 전날 술을 잔뜩 마시고 화장이 번진 채로 와서 허겁지겁 해장하는 모습, 콧물을 흘리는 아이에게 국물을 호호 불어서 먹여주는 모습. 겉보기식 꾸며낸 삶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우리의 삶, 물끄러미 바라보면 낭만적인 다큐 같다.
그런 공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셋이 앉아 국밥을 먹는 시간이 좋았다. 할머니는 국밥집만 오면 밥을 너무 많이 먹어 살이 찐다고 웃으셨고, 할아버지는 국밥을 다 드시고 갑자기 쓰고 오신 모자가 이상하지 않냐고 나에게 물으셨다. 늙는 것이 점점 신경 쓰이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세월의 빠름이 점점 지독히도 싫어졌다. 할머니가 신발 정리하라고 계속 잔소리를 하셨으면, 할아버지가 내 젓가락질을 보고 계속 뭐라 하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