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마다 나는 ‘집 냄새’가 있다.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평소 그 친구에게서 났던 냄새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온통 퍼져 있는 것을 맡고 집 냄새의 존재를 알았다. 집 냄새는 참 오묘한 향이다. 인위적인 향수나 디퓨저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섬유유연제 옷 냄새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평소 자주 먹는 음식 냄새, 자주 사용하는 바디 워시 냄새, 동물을 키우는 친구라면 특유의 꼬순 냄새가, 어린 동생이 있는 친구에게는 아기 파우더 냄새가 섞여서 난다. 영화 기생충에서 '다송'이가 '기택'과 그 아내의 냄새를 맡더니 둘이 같은 냄새가 난다며 말해 흠칫했던 것처럼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의 냄새는 생각보다 깊게 우리에게 스며있다.
이사 가는 날, 집에 가구와 짐을 싹 빼고 집을 찬찬히 돌아보면 텅빈 공간에서는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람이 밥을 해 먹고, 빨래를 하고, 같이 땀 흘리고 몸을 씻어야, 비로소 집 냄새가 집안에 풍기는 것이다. 편안하고 애정하는 공간은 그 냄새조차 내게 큰 의미를 남긴다. 가장 정겹고, 애틋한 집 냄새라 하면 우리 할머니 집 냄새다. 할머니 집에 들어서면 오래된 나무 냄새, 김치 냄새, 에어컨 냄새, 아침에 목욕 다녀오신 할머니의 포근한 냄새가 난다. 할머니 냄새로 가득한 공간은 날 절로 나른해지게 만든다. 밖에서는 늘 자신을 채찍질하고 사람과 일에 스트레스받는 나도 할머니집에 오면 그저 똥강아지, 할머니 밥만 열심히 먹어도 칭찬받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게 나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할머니 집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을 때 할머니께서 내 바지를 하나 빨아주셨다. 빨아주신 것도 잊고 있다가 서울에 도착해 얼마 뒤 가방을 열어 그 바지를 꺼냈을 때 할머니 냄새가 바지에 가득 절여져 있었다. 한참을 킁킁대고 힐링하는 표정으로 있자 동생이 수상하다는 듯이 날 쳐다봤지만 아무렴 어때. 엄마에게 이 바지는 당분간 절대 빨지 마라고 얘기한 뒤 비닐봉지에 곱게 넣어 힘들 때마다 열어서 냄새를 맡았다. 할머니 집 냄새를 사랑하는 건 내가 할머니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영원하지는 않을 , 그 사람이 있어야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냄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