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도 모든 음식을 다 잘하시진 않는다.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서울-창원 꽤 먼 거리에 떨어져 살기에 할머니 음식은 내게 연중 몇 번 먹을 수 없는 축제음식이나 다름없었다. 늘 경건한 마음으로 위를 비우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다. 배가 안 고프더라도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할머니 집 루틴에 맞게 쉬지 않고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손맛이 좋으셨고 할머니가 해주시는 요리는 대부분 다 맛있었다.
혼자 할머니집에 놀러 갔던 날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나 이렇게 셋뿐이라 간단하게 점심을 때울 생각이었다. 할머니가 갑자기 스파게티를 해주신다고 해서 내심 기대되기도 하고 궁금했다. 할머니가 해주시는 양식 요리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할머니 양식 요리를 먹어본 기억이 나질 않았다. 우리 할머니 베스킨라벤스 아이스크림이 최애(?)이실 만큼 요즘 입맛이신데 양식을 같이 안 먹어봤다니.
스파게티를 해주리라 하셨던 할머니가 창고에서 뜬금없이 업소용 참치캔을 들고 나오셨다. 분명 스파게티를 만들어주신다고 하셨는데 웬 참치지? 싶었는데 스파게티에 참치를 넣으신단다. 신박한 방법이었다. 뭐 해산물을 파스타에 많이 넣어먹으니까 엇비슷한 맛이 나겠지 싶었다. 시판용 스파게티 소스와 캔참치 그리고 면. 스파게티에서 왠지 구수한 맛이 날 것만 같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나는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후루룩 스파게티를 먹었다. 솔직히 말하면 외국에서 외국 식재료로 대충 김치찌개를 만들었을 때 나는 오묘한 맛이 났다. 시큼한데 또 구수했던 서툰 스파게티 맛이었다. 할아버지도 한 입 스파게티를 드시더니 "맛이 별로 없제?" 하신다. 할아버지가 만드신 것도 아니면서 괜히 내 반응을 살피셨다. 아예 못 먹을 맛은 아니었기에 "맛있는데요?"라고 답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자주 먹는다. 참치캔 집에 들고 갈래?" 할머니가 한마디 덧붙이셨다. 업소용 참치캔은 아니지만 우리 집에는 참치캔이 넘쳐난다. 먹을 게 없을 때 간단히 요리해먹을 수 있는 최고의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얼른 됐다고 집에 많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저 큰 참치캔을 비닐봉지에 어찌어찌 넣어 배낭에 넣은 다음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 봤는데 웃음이 났다. 참치를 좋아하는 고양이도 그건 좀 오버라고 할 것 같았다.
할머니 집에 가면 늘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음식이 있었기에 그게 일상인줄 알았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큰 딸네 집을 맞이하기 위해 손녀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하고,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과 요구르트를 사놓으시고, 새벽에는 수산시장에 가 회를 떠 오시는 걸 알면서도 몰랐다. 커갈 수록 할머니라는 사람에 대한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할머니의 일상을 함께 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