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하나 주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하루도 다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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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요가 수업에 출석했을 땐, 새어 나오는 민망함을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기다림을 느껴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낯설어서 웃음이 나왔다.
두어 번 출석해 보니, 꽤 진지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기다림을 느낀다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감을 잡은 듯했다.
그렇게 요가 수업에 차차 적응해 나갈 무렵, 선생님의 말씀이 와닿기 시작했다.
새로운 자세를 취할 때마다 선생님은, ‘스스로가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느껴보라’고 하셨다. 방어적인지, 회피하려 드는지, 그냥 받아들이려 하는지..
나는 편안했던 때와 현재의 고통을 비교하면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그리움에 가득 찬 마음으로 자극을 대했다.
선생님은 자극에 반응하는 태도가 내가 평소에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태도일 것이라 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좋은 시절을 추억하고 계속해서 그때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귀한 것이다. 그러나 그 그리움 때문에 지금의 행복을 업신여겨선 안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지나간 행복에 적당한 마음을 두고, 지금의 행복을 찾아내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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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 수업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프로젝트의 범위가 무엇인지는 수없이 회의하고 그렇게 열심히 다루면서, 내 몸의 범위는 잘 생각해 보지 않는다’고. 그 말을 들으니 내가 나의 몸에 무신경했다고 반성하게 됐다.
그 이후로 내 몸을 인식하면서 움직여 봤다. 나의 신경이 온몸 곳곳에 닿는 느낌이 신기했다.
필라테스 수업에서는 처음 본 회사 사람들과 동그랗게 모여서 평상시라면 절대 하지 않을 자세를 부끄럼 없이 취한다. 나의 몸을 다스린다는 주인의식을 갖기 위해 다들 열심히 몸부림친다. 그렇게 내 몸을 온전히 주재하는 사람이 된 아침이면, 내 하루도 알차게 주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외부의 것에 정성을 들이는 만큼, 나만 아는 나의 내면의 것에 정성을 들이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면, 반듯한 중심을 가진 채 알맹이가 가득 찬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