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물에서 살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오늘은 조금 이과적인 얘기를 해보려고 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위해서는 문과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 세상의 편견이니, 이과적 탐구심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비춰낸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거든.
어쨌든, 물고기라는 분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지 황당하지? 당장 물고기를 대라고만 해도 고등어, 꽁치, 멸치, 아귀, 대구... 얼마나 물고기가 많아. 그뿐만이야? 상어, 가오리, 먹장어, 칠성장어... 넓디넓은 바다만큼 다양한 생물이 물고기에 속하지.
그러나 정작 물고기를 분류하려고 하면 큰 문제에 하나 부딪히게 돼. 모든 물고기를 공통으로 삼는 하나의 특징을 들어볼까? 바로 물에서 산다는 거겠지? 근데 그러면 고래나 돌고래도 물고기잖아. 근데 학교에서 주구장창 들었듯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포유류잖아. 젖도 나오고, 폐도 있고.
아! 그러면 되겠네. 폐가 있어서 물 속에서 숨을 못 쉬는 동물은 아무리 물에서 살아도 물고기로 안 치면 되겠네. 하지만 폐어 같은 물고기는 분명 물고기처럼 생겼고 아가미도 있지만 정작 물 속에선 숨을 못 쉬어. 폐가 훨씬 발달해서 공기 중의 산소를 들이마셔야 하거든.
이것 참 문제네... 땅 위에 못 올라오는 수생 동물을 물고기라고 하려고 해도, 망둥어 같은 게 있고. 젖이 안 나오는 걸로 하려고 해도, 젖 비슷한 걸 분비하는 물고기가 있어. 임신을 안 한다고 하려고 해도, 상어나 해마는 임신을 하는 걸.
또, 분명 게나 가재 같은 건 물고기가 아닌데 이런 건 어떻게 물고기와 구분하지? 뼈가 없다는 걸 구분점으로 삼으려고 해도, 상어, 가오리, 칠성장어, 먹장어 같은 애들은 뼈가 없는데. 딱딱한 껍질로 구분하려고 해도, 예상했듯이 마찬가지로 물고기 중에서도 딱딱한 껍질을 가진 친구들이 있지.
그리고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다다라. 모든 물고기를 포함하면서 모든 물고기 아닌 것들을 제외하는 형태적 분류가 불가능하다는 거야. 그럼 이제 우린 무슨 수로 물고기를 정의할 수 있지?
이럴 때 과학의 힘이 빛나는 거지! 모든 생물은 공통 조상에서 진화해 왔고, 적절한 분기점을 짚고 거기를 기준으로 삼아 그 생물의 모든 후예를 같은 분류 안에 넣는 방식이야. 예를 들어, 생긴 건 땃쥐 같고 생리는 가시두더지와 비슷한 모르가누코돈의 후예를 포유류라고 하는 거지.
이런 방식으로 분류를 했을 때 장점은 각 분류의 특징을 손쉽게 정의할 수 있고, 그 분류의 진화적 기원을 한눈에 알 수 있다는 거야. 모르가누코돈은 인간처럼 젖을 먹이지만 오리너구리처럼 알을 낳고, 토끼처럼 굴을 파면서 쥐처럼 이가 계속해서 자라는 동물이었어.
모르가누코돈의 이런 특징이 모든 후예 동물에게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어떤 특징이 이어지고 어떤 특징이 새로 생겼는지 밝혀내는 것으로 왜 이 생물은 이렇게 생기게 되었는지를 효과적으로 밝혀낼 수 있지. 어렵다면, 생물을 분석할 때 기준점을 잡아주는 거라고 해볼까.
예를 들어, 포유류는 일부 유대류와 일부 원숭이류의 생물들을 제외하면 모두 적록 색맹이야. 이건 모르가누코돈이 적록 색맹이었기 때문이지. 모르가누코돈은 야행성이었어서 적록 색맹이어도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원숭이들에겐 빨간색을 볼 수 있는 게 큰 이점이었어서, 원뿔 세포를 하나 더 만들게 되었지.
반대로, 포유류는 청각과 후각, 촉각이 매우 민감하고 눈이 큰 편이야. 당연히 야행성인 만큼 이런 면으로 발달해야 했겠지. 이렇듯 외형을 기준으로 분류하기보다는, 조상을 따져가며 나무 같은 모양의 계통도를 만드는 편이 더 정확한 분류를 할 수 있게 돼.
즉, 아무리 고래가 물고기처럼 생겨도, 고래의 조상이 하마나 돼지와 비슷한 동물이었기 때문에, 또 고래의 몸구조에 조상들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에 고래가 하마, 돼지와 함께 소류에 들어가. 조상을 찾아가면 왜, 그리고 어떻게 이 동물이 여기까지 왔는지도 볼 수 있게 되지.
그러면 모든 물고기의 조상이 누군지 볼까? 과학자들은 모든 물고기의 조상 격에 해당하는 동물로 5.2억 년 전의 하이쿠이쿠티스, "해구어海口魚"를 꼽아. 칠성장어나 먹장어처럼 뼈와 머리뼈가 없는 물고기지. 해구어의 후예로는 상어와 가오리처럼 몸이 연골로 된 연골어, 딱딱한 뼈를 가진 경골어가 있어.
그리고 경골어류에 속하는 물고기로는 지느러미가 부채처럼 생긴 조기어條鰭魚, 그리고 살집 있는 지느러미를 가진 육기어肉鰭魚가 있지. 둘 다 이름에 지느러미 기鰭가 들어가. 조기어류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생선, 위에서 말한 고등어, 꽁치, 멸치, 아귀, 대구 같은 게 속해.
육기어류에 속하는 물고기는 얼마 없어. 실러캔스, 폐어 같은 물고기가 속하거든. 아! 그리고 틱타알릭이라는,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물고기도 속해. 실러캔스야 공룡만큼이나 오래된 고대어로 유명하고, 폐어는 폐가 있는 물고기로 유명하지만 틱타알릭은 좀 생소하지?
틱타알릭은 물고기처럼 생겼지만, 살집 있는 지느러미가 제대로 된 팔다리로 진화한, 큰 덩치로 뭍을 돌아다니던 포식자였어. 즉, 모든 육상 척추동물의 조상 격인 친구야. 잠만...
그래, 맞아. 모든 육상 척추동물의 조상이 육기어류에 속하는 물고기라는 소리는, 모든 육상 척추동물이 육기어류, 나아가서 물고기로 분류된다는 소리야. 즉,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라고 배웠지만, 돌고 돌아 고래는 결국 물고기인 거지.
왜냐면 고래의 조상인 육상 척추동물의 조상이 해구어라는 작은 물고기였으니까. 고래뿐만이 아니라, 너도, 나도, 개도, 고양이도, 까마귀도, 까치도, 공룡도, 악어도, 전부 다 물고기야.
어류 아래에 경골어류 아래에 육기어류 아래에 육상어류, 우리는 다 땅물고기인 셈이지.
우리는 물이 새는 비늘이 아니라 질긴 피부를 가진, 공기를 담는 부레가 아니라 공기를 순환시키는 폐를 가진 물고기야. 우리가 물고기라는 사실은 정말 의미 있지 않아? 물고기들이 땅으로 올라오기 위해 수많은 변화를 거쳤지만, 우리는 여전히 물고기야. 그것도, 물에 사는 물고기.
우리가 끊임없이 물을 마셔야 하는 이유도, 그러면서 또 소금이 없으면 죽는 이유도, 우리는 다 바다에서 왔기 때문이야. 우리는 바다를 담고 다니는 고기 물풍선이지. 우리는 바다에서 나온 적도, 바다를 탈출한 적도, 바다를 떠난 적도 없어. 우리 안에 바다가 있잖아.
아무리 먼 나라로 여행을 가도, 한식을 꼭 챙겨 가는 사람들이 있지? 아무리 집에서 멀리 떠나도 고향의 음식 없이는 지낼 수가 없는 거잖아. 김치라도, 김이라도, 하다못해 고추장 조금이라도, 한식을 어떻게든 가지고 가잖아.
모든 인류가, 모든 포유류가, 모든 새와 뱀과 개구리가 마찬가지야. 도저히 고향을 떠날 수가 없어서, 고향을 그대로 가지고 육지까지 올라온 거지. 그리고 아무리 고향에서 멀리 지낸다고 해도, 여전히 고향을 생각하며 물과 소금을 먹어야 해. 고향의 음식 없이는 버틸 수가 없는 거지.
그런데, 정작 지금 바닷물을 먹으면 짜서 버틸 수가 없어. 바닷물만 먹으면 금방 죽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 왜 그럴까?
척추동물의 조상이 처음 등장한 지 벌써 5억 년이 지났어. 그동안 바다에서 증발한 물은 비가 되어 땅을 씻고 흘러흘러 내려오며 소금을 바다에 차곡차곡 쌓았지. 그래서 최초의 척추동물이 살았던 우리 모두의 고향은, 이미 못 알아볼 정도로 달라진 거야.
집의 물맛이 변치 않은 것을 안심하며 집에 들르지도 않은 어느 신라 장수와는 다르게, 우리는 고향의 물맛이 변한 지 너무나 오래되었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고향을 떠난 이들은 고향의 물을 마시면 고향이 아닌 저승 생각이 나고, 아직까지 고향에 사는 이들은 온갖 진화를 거쳐 겨우겨우 몸 안의 옛 고향을 유지하며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지.
즉, 염도 3.5프로의 변해버린 고향보다도 더 가까운 우리 모두의 고향은 0.9프로 염도의 우리 몸 안이야. 아무리 고향에서 멀리 왔어도, 고향을 잊지 않은 거지.
어때, 이과적 탐구심이 밝혀낸 세상의 아름다움이? 우리가 모두 육상어류, 즉 땅물고기라는 점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주고, 우리 몸 속의 고대의 바다가 담겨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생리와 생체적 특징의 유서 깊음을 알려주며, 우리가 아직도 바다를 끌고 다닌다는 사실은 진화의 한계와 기발함을 드러내지.
우리가 모두 땅물고기라는 사실에 내가 흠뻑 빠진 지도 벌써 몇 달이 되었어. 우리는 물을 떠난 적이 없어. 아직도 물에 '빠져' 사는 중이지. 이 사실에서 각자 느끼는 감상은 모두 다르겠지만, 그래도 다들 무언가를 얻어 가면 좋겠어.
나는 자연의 정교함과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잔머리로 헤쳐나가는 능력,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상하게 생겨먹은 물고기라는 점에 빠졌지만, 너는 어때? 물고기로서 땅에서 살아가는 건 어떤 느낌이야?
이번 글은 「The Hardest Problem Evolution Ever Solved」이라는 영상에서 영감을 얻었어. 마침 누가 번역한 글도 올려놨길래, 다들 봐 보라고 급하게 써본 글이야. 너도 나처럼 이 영상에서 영감을 얻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