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의 양면
요즘 날이 춥지? 날씨가 슬슬 영하에 접어들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이런 시기가 되어야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바로 컴퓨터를 조금 더 뜨겁게 사용하는 거야.
여름날 방에서 컴퓨터를 사용했다간 37도짜리 물주머니와 60도짜리 규소-금속 덩어리가 정열적으로 방 온도를 높이다가 물주머니가 익어버리기 때문에 마음 놓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가 없어. 게임 하나나 뭘 제작/편집한다거나 하면 쉽사리 60도를 넘어버리니까 말야.
그래서 여름에는 컴퓨터를 켜놓고 40도 위로 올라가지 않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지. 인터넷에서 탭도 다 닫고, 음악도 유튜브가 아닌 다른 음악 전용 프로그램으로 틀어서 최대한 컴퓨터를 시원하게 쓰려고 최선을 다해야 해. 생존을 위해서 말이야.
하지만 날씨가 조금만 더 선선해지는 가을이 찾아온다면? 걱정을 좀 덜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어. 난방을 틀어야 될 정도의 날씨가 된다면? 컴퓨터 전기세는 그저 난방비의 다른 이름이 되지.
왜 갑자기 글 제목하고는 하나도 상관없는 얘기를 하고 있냐고? 알 사람은 알겠지만, 정적인 배경화면보다는 개성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출하고 싶은 사람, 아니면 그냥 고정된 배경에 질린 사람을 위해 '월페이퍼 엔진'이라는 유료 소프트웨어가 있어.
물론, 보통 이런 거에 신경쓰는 사람이면 게임이나 애니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런 류의 배경화면이 많긴 하지만, 꼭 그런 거만은 아니니까, 궁금하다면 한번 찾아보고. 어쨌든, 나는 빗소리를 좋아해서 빗소리와 노래를 함께 트는 편이거든.
또, 내가 좋아하는 게임 중엔 "레인 월드"라고, 비가 올 때마다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빽빽한 비가 내리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 있어. 이제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겠지? 날씨가 쌀쌀해졌으니 이제 맘껏 월페이퍼 엔진으로 레인 월드 바탕화면을 틀고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게 돼서 기분이 좋다는 거야.
너도 빗소리를 좋아해? 빗소리는 사람 몸의 기본 리듬과 닮아서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나, 뇌파를 안정화시킨다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나, 그런 말이 많지만, 정작 그런 말을 듣고 빗소리를 좋아하게 되는 사람은 몇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빗소리라는 소리가 좋은 거지. 어떤 음악을 듣고 그게 좋은 이유를 굳이 따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그냥 내 뇌를 딱 좋게 긁어주는 느낌이 좋을 뿐. 물론, 내가 좋아하는 것의 좋은 점을 찾는 거는 당연한 본능이지만, 그런 걸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않겠어?
내게 빗소리는 그저 좋은 거야.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준다는 느낌도 별로 안 들어. 오히려 비가 온다며 신이 나지. 빗소리와 이어진 추억도 딱히 없어. 오히려, 어렸을 때부터 빗소리를 좋아했던 것 같아. 그러니까 아마 내가 빗소리를 좋아하는 것은 나 자신의 취향인 것 같아.
그래서, 빗소리는 빗소리 그 자체로 좋다고. 물론 비가 오는 그 상황도 좋지. 안타깝게도, 빗소리와는 다르게 비에는 실제 해악이 있어.
"오늘 비 온다고 하지 않았어?"
"응, 우리 집 갈 때쯤 온다는데."
"아, 난 비 맞기 싫은데."
"그래? 난 비 좋아하는데."
"난 싫어, 괜히 우울하고, 찌뿌둥하고."
난 비를 참 좋아해! 빗소리뿐만 아니라 비를 좋아하지. 비는 해를 가리고 기압을 낮게 만들며, 출퇴근/등하교길을 힘들게 해서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든다지만, 나는 비를 좋아해. 사랑할 정도야.
하지만 그렇다고 비가 좋기만 한 건 아니야. 아니, 나는 물론 어떤 폭우가 쏟아져도 기꺼이 홀딱 젖어가며 비를 만끽하겠지만, 비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례도 셀 수 없이 많지.
2022년의 폭우를 기억해? 나는 그날 밤 10시에 무릎까지 잠긴 길거리를 지나 폭포가 되어버린 언덕길을 오르며 버스가 다니는 도로를 찾아 물살을 헤치고 헤쳤어. 그날 나는 오히려 나은 편에 속하는 거였지. 뉴스까지 탄 서초동 현자를 제외하고도, 그해 폭우로 죽은 사람만 수십 명이야.
"기생충"에 나오는 것처럼, 비가 오면 저지대의 반지하는 침수되지 일수지. 저지대가 아니더라도 반지하에 살면 비는 언제나 걱정거리야. 그런 삶을 사는데 빗소리가 반가울 리가 있나.
그런데, 비를 맞으며 한쪽에서는 살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똑같은 폭우를 '들으며' 빗소리가 듣기 좋다, 빗소리로 평온해진다는 감상을 남겨. 참 아이러니하지.
물론, 비 자체에는 어떠한 선악도 없어. 우리가 비를 보는 시선도 오히려 긍정적이야. 전 세계에서 비가 내리는 걸 보고 비가 "온다"라고 표현하는 언어도 없거든. 비가 우리를 찾아왔다고 여길 정도로, 논 농사를 짓던 우리에게 비는 반가운 거였어.
그렇다고 해도, 비가 쏟아질 때의 감상이 그저 '듣기 좋다'로 끝나는 것 또한 너무 가벼운 것 아닐까. 비는, 세상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좋음과 나쁨을 동시에 품고 있어.
내가 바람 따라 커튼처럼 흔들리는 빗줄기를 보면 감탄하는 동시에, 그 배경이 되는 건설현장에서는 늦춰진 공사일에 시름이 쌓이겠지. 카페에 앉아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을 감상하는 동시에, 찰팍찰팍 우산 없는 사람이 뛰어가.
흠뻑 젖은 채 계곡이 되어버린 골목길을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비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동시에, 골목길 끝에 목숨을 잃을 뻔한 트라우마를 또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
아름다운 것이 모든 면모에서 아름다우면 참 좋겠지만, 세상에 완벽한 게 얼마나 있겠어. 그러니 우리 눈에 아름다움만 보인다고 그 대상의 모든 면이 아름다울 거라고 굳세게 믿으면 안 될 것 같아.
똑같은 사건이, 사물이,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르게 보여. 나에게는 아름답지만 너에게는 끔찍할 수 있을 수 있어. 똑같은 '좋았던 옛날'이 남에게는 '겨우 버텼던 어제'야.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게 사실 좋기만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이에게 화를 내지 말자고. 내가 좋아하는 게 좋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언제나 명심해야 조금 더 유연한, 열린 사고를 할 수 있겠지. 남들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고, 나를 더 쉽게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