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내가 있었네
늘 밖에 나갈 때면 왼쪽 손목에 스마트워치를 찬다.
휴대폰보다 가볍고 시간 보는 데에도 훨씬 간편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스마트워치가 손목에서 사라졌다.
'집에서 가져오지 않았네?'
깜박거리는 기억을 탓하며 집으로 되돌아갔다.
집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책상 쪽에도, 늘 놔두는 곳에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집안을 온통 샅샅이 뒤졌는데 어디에서도 워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자신의
기억을 지워버린 채 존재감마저 희미하게 사라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움직이는 동선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쓰레기 수거하는 곳까지 달려갔다.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내 워치를 보았다. 워치 자신을 잃어버린 대가를 똑똑하게 보게 되었다.
둥그런 액정이 온통 파편으로 깨진 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광맥처럼 실금의 하얀 조각들이 내 눈을 보고 화를 내고 있었다.
실금으로 갈라져버린 조각들이 울고 있었다.
'세상에 얼마나 아팠을까?'
감정이 이입되었다. 가슴이 아려왔다.
둥그런 시계면을 만지니 조각들이 손을 거칠게 쓰다듬는다.
아내에게도 워치에게도 얼굴을 들 면목이 없었다.
잘 챙기지 못한, 잘 관리하지 못한 내 허술함이 못내 부끄러워졌다.
그저 물건으로만 여겼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울적하게 한다.
정이란 그런 것일까. 잘나거나 못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 해온
세월이 정으로 마음에 새겨진다는 것. 사람에게만 그럴 줄 알았는데
헤어지고 보니 물건도 생명을 지닌 사람처럼 정이 들었구나 싶다.
아내의 마음 씀씀이로 다시 다른 워치를 만나게 됐다.
저번의 워치보다 조금 큰 것 같지만 그래도, '그 녀석이 다시 돌아왔구나'
웃음 띄우며 슬픈 듯 기쁜 듯 양가감정을 간직한 채로 인사한다.
워치는 손목에 있지만 예전의 녀석과는 다른 새로운 것이다.
오래 정을 느껴온 워치가 아니어서인지 손목에 착 달라붙지 않는다.
왠지 헐겁기도 하고, 귀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쓰레기 수거장에 떨어진 채 움직임이 멈춰 있던 스마트 워치.
그것은 곧 나였다. 박살이 났으면서도 나 여기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띠링띠링 죽어도 울리겠다는 애달픔.
나는 새로 산 워치를 쓰다듬었다.
'나 다시 돌아왔어요.' 인사하는 것만 같다.
반갑다 워치야. 나한테 와 줘서 정말 고맙다.
앞으로 위치추적도 잘해 주길 바란다.
박살 난 스마트 워치를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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