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지만 집에오기

긴박한 글씨체

by 수필천편

나는 늘 어딘가를 잘 찾아 가질 못한다.

집에서 대략 가는 길을 살펴보고 나와도 금방 잊어버린다.

길눈이 어둡기 때문이다.


치매라는 것은, 취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것 같다.

나도 치매가 되면서 길 찾기라는 나의 약한 부분부터 공격당했다.

그래서인지 길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버스에서 제때 잘 내려놓고도, 내가 갈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내한테 전화했다. 아내가 위치추적을 해본다고 했다.

"꼼짝 말고" 기다렸다.


바로 전화가 왔다. 지금 내가 있는 장소에서, 아내가 불러 주는 가게를 찾아가라고 했다.

일단, 뭐가 보이는지 보이는 대로 다 불러 보라고 한다.

나는 보이는 대로 간판 상호를 불렀다.


"전설의 감자탕! 됐어, 거기야!"


아내가 퀴즈 정답을 외치듯이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득음을 했다더니 보청기를 박살 낼 판이다.


아내가 원격 조종을 시작했다. 통화를 하면서 아바타처럼 계속 걸어갔다.

만물상을 지나고, 감자탕도 지나고, 연합의원을 지나고, 케밥까지 지나갔다.

미용실을 지났다. 슈퍼를 끼고 골목으로 올라갔다. 익숙한 편의점이 보였다.

그제야 기억이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보여?

보여!


전화를 끊고 뛰어갔다.

드디어 평생학습관에 도착했다. 엇?

나는 다시 아내한테 전화했다.


근데 개강은 다음 주래.

그러네. 나도 깜빡했네. 얼른 다시 와. 올 때는 길 건너서 버스 타는 건 알지?


그럼. 알지. 나를 뭘로 보고.

응 얼른 와.

아내가 웬일로 말도 끝나기 전에 바로 끊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고,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

오자마자 일일기록을 하고, 글을 쓰고, 브런치 댓글을 달고, 좋아요도 눌렀다.

오전 임무를 끝내고 나와보니 아내는 주방에서 바쁘다.


아내가 차려놓은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고, 아내한테 머리 드라이도 받고,

아내가 입혀주는 "가다마이"를 잘 차려입고 제비처럼 시낭송하러 나갔다.

참으로 한량이 따로 없다.



저녁이 되었을 때, 책상 위에 놓인 종이 한 장이 보였다.

뭐지? 약도(?)라기엔 애매한데...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비로소 보였다. 거기에는,


길 잃은 남편 때문에 애가 탔을 아내의 초조함이,

치열하게 휘갈겨 쓴 글씨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아내가 빠르게 써 나간, '긴박한 글씨체'가 가슴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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