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지만 별빛아래

그날밤

by 수필천편

어두운 밤 아내가 나를 찾아냈다.


시낭송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 일찍, 다들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다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

늦을까 봐 일찌감치 택시를 타고 갔다.

학교운동장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늘 그렇듯이 내가 일등으로 왔나 보다.


천안까지 한 회원의 차를 넷이 같이 타고 갔다.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연수원이 보인다.

생각보다 큰 건물이다. 강당에 들어서니 제법 크다. 아니 압도될 정도로 넓은 공간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고도 남은 자리가 있을 정도였다.

조별로 나누어진 사람들이 다투어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강의를 듣기도 하고,

각 지역 참가자들이 장기자랑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가며 다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연수를 하고 나서야 저녁 8시 조금 넘어서, 출발했던 초등학교 운동장에 내린다.

갈 때는 몇 명씩 승용차를 나눠 타고 갔다가, 올 때는 회장이 타고 가는 차에 같이 동승했다.

그렇게 편안하게 내렸다. 도착해서는 각자 모두가 뿔뿔이 흩어진다.

나 혼자 어두운 운동장에 덩그러니 남았다.


아내가, 늘 그렇듯 틈틈이 위치 추적을 하면서 내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나 보다.

학교 앞에서 우왕좌왕 갈팡질팡 하는 내 위치를 보다 못했는지, 전화가 왔다.


조금만 더 큰길로 나오면 집에 오는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했다.

걸어와도 되지만 방향을 잃고 헤맬까 봐 택시를 잡으라 한다.

텅 빈 머리처럼 행동 또한 역시나 멍청할 뿐이었다.


아내가 다시 전화를 했다. 여성병원이 크게 보일 거라고, 무조건 그 병원을 찾으라고 했다.

걸어가니 병원이 보였다. 그러면 다시 엘지전자대리점이 또 크게 보일 거라고,

그 앞으로 계속 걸어가라고 말한다. 엘지가 눈에 뜨인다.

그리고 나는 다시 아내의 코치를 받으며 걸어간다. 큰 사거리가 나온다.

엘지전자 맞은편으로 건너라고 했는데도, 다른 곳으로 건너갔다.


아내는 괜찮다고, 그쪽으로 와도 된다고 했다.

농협도 보이고, 맥도널드도 보인다. 동네로 접어들었단다.

내가 어느 쪽으로 걸어오는지 아내가 가늠하고 있다.

또 뭐가 보이는지 묻는다.


"오두막이 보여."

"오두막? 아! 연탄구이 오두막 맞지?"

"어 고추장구이라고 쓰여있네"

"맞아. 다 왔네. 잘 왔네. 빨리 왔네. 금방 왔네."


아내가 끝도 없이 칭찬한다. 얼마나 애가 탔으면 그 목소리에 안도의 한숨이 느껴진다.

됐다고 한다. 다 온 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마지막 관문, 단골마트만 찾으면 된다고 한다.

분명히 그 근처에 있다고 한다.

찾았다. 단골마트다. 이제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다.


교회 쪽으로 쭉 가겠다고 했다. 교회 쪽으로 가서 주민센터 방향으로 가겠다고 했다.

아내가 알겠다고 하면서도 전화는 끊지 말라고 한다.


"나 보여?"

엇!

아내가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아내는 분명 축지법을 쓰며 눈에 불을 켜고 왔을 것이다.

아마 우린 둘 다 서로 모르게 뛰었을 것이다.

나는 걱정을 덜어줄 마음에, 아내는 길을 붙잡아 주는 마음으로 말이다.


애틋한 견우직녀는 여기까지다. 바로 현실 부부로 돌아온다.

왜 물병까지 두 개씩이나 무겁게 짊어지고 오냐며, 그 자리에서 물을 따서 아내가 콸콸 쏟았다.

아내는 화를 냈지만, 책까지 지고 걸어온 내가, 얼마나 애를 먹었을지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쓰고 왔던 모자를 내 머리에 씌워 주고, 목도리를 벗어 내 목에 둘러 주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 인간!" 연신 투덜거린다. 그만큼 속이 탔겠지 싶다.


언제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신혼 때,

홈플러스에서 자두를 사서 하나씩 먹으며 집으로 갔다. 어스름 저녁때다.

아내도 나도 참 좋아하는 한 때의 추억이기도 한 밤이다.

그런 신혼을 지나 지금 나는 노년의 나이에 접어들었고, 더군다나 알츠하이머다.


치매지만 그럼에도, 콧날이 시큰해지는 이 밤 또한 기억하고 싶다.

꽃샘추위가 기승인, 오늘의 이른 봄밤은 절대로 잊고 싶지 않다.


행여 남편이, 그것도 밤에 길을 잃고 헤매다 추위를 만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내 발걸음 보다 한 발짝이라도 먼저 닿으려고 한달음에 뛰어 왔을 아내의 마음을,

나는 죽는 날까지 잊고 싶지 않다.


아무리 치매가 깊어진다 해도 가슴속에 간직할 소중한 기억이다.

이날만큼은, 아내와 걷는 이 쌀쌀한 이른 봄밤만큼은 간직하련다.


아내가 좋아하는 "으음~, 봄밤 공기~~"가, 내 기억에서도 스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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