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사람들
"서둘러, 버스 올 때 됐어."
보청기 배터리도 사야 하고 붓과 먹물과 화선지도 사야 한다며 아내가 서두른다.
버스가 바로 왔다.
"두 명입니다."
손가락 운동을 하며 지나치는 정류장을 눈여겨본다.
보청기 배터리를 세 개나 샀다.
젊은 청음사가 어르신 지난번 보다 훨씬 좋아 뵌다고 인사를 한다.
아내도 많이들 요즘 그런다며 맞장구를 친다.
청력이 치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청음사가 먼저 말하자,
청력이 안 좋으면 치매 확률이 "48프로"나 올라간다고 아내가 더 아는 체를 한다.
확실한지 아닌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심각하게 청력과 치매에 대해
스몰토크 아니 헤비 한 토크를, 하지만 짧게 했다.
다시 화방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아내가 지도를 보여주며 여기가 어딘지 알겠냐고 물었고,
나는 연신 응응했지만 고개는 갸웃거렸다.
뒤에 앉은 젊은이가 보다 못했는지 핸드폰을 보여주며 노선을 알려준다.
이 버스는 사거리에서 돌아가는 버스라고 한다.
아내가, 그러면 차라리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는 게 낫겠다고 하자,
청년도 그렇다고 말해준다. 청년이 일러 준 대로 한 정거장 미리 내렸다.
젊은 친구가 참 고맙네. 그러게. 하면서, 아내와 입을 모아 칭찬하며 화방으로 향했다.
캘리그라피 준비물을 산다. 붓과 먹과 화선지를 샀다.
화방 주인이 나를 알아보며 또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민화와 문인화를 배웠으니 이 화방에 자주 와서 준비물을 많이 샀기 때문일 것이다.
빠르게 부지런히 볼일을 보고, 집에 올 때는 걸어왔다.
걸으면서 시낭송을 했다.
아내가 가끔씩 순서도 알려주고 틀린 부분도 적재적소 체크해 준다.
시를 외우지는 못해도, 강제 귀동냥 몇 년 사이에 아내가 나보다 더 많이 안다.
월요일은 수업이 없어서 아내와 이런저런 볼일을 본다.
헬스장에 갔다가 치과에 가기로 했다.
시간이 되어 나가려고 보니 아내가 헬스장에 와있다.
젊은 코치와 말을 하고 있다.
"우두커니 멀뚱멀뚱"있다가 오겠거니 했는데,
직원한테 물어보니 잘하고 있다고 하더란다.
환갑 지나서 이 정도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면 되는 거라고 했단다.
또 인바디 점수가 79점이라는 것도 굉장한 거라고 했다 한다.
보통 60세 넘으면 5,60점대라고 했다나.
그럼에도 헬스 3년 차에 "초딩몸매"인건 너무하지 않냐고, 꼭 한 마디 하는 아내다.
나는 늘 "너무"하고 있다.
치매라면 모든 것이 적어지는 것인데,
이상하게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소리는 또 너무 많이 듣는다.
그런 얘기를 하며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치과에 갔다.
아랫니 잇몸치료를 마저 하고 나왔다.
아내가 원장님과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는다.
원장님이 "특별히" 주신 치간 칫솔도 주머니에 잘 넣고 나왔다.
공원을 지나오며 볼이 빵빵한 아기를 봤다. 귀엽다며 말도 붙였다.
유모차에 앉아 있는 아기도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웃어준다.
돌아보니 나는 몰라도 상대방은 모두 나를 기억하고 알아봐 주었다.
친절한 사람들로 가득 찬 하루였다.
더 세심하게 눈여겨보고 낯 익혀 두고 싶다.
한 번이라도, 나도 먼저 아는 체를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