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의 잉크가 떨어지도록

인생 2막 나는 알츠하이머다

by 수필천편

인생 2막 나는 알츠하이머다

3년 차 초로기치매 일상이야기 - 볼펜의 잉크가 떨어지도록



쓰다 보니 볼펜이 나오지 않는다. 어지간히 쓰긴 썼나 보다. 한 자루가 눈 깜빡할 사이에 떨어졌다. 책상 주변을 둘러보니 볼펜 한 자루가 보인다. 혹시나 해서 볼펜의 심을 빼서 본다. 이 것도 간당간당하다. 책상 서랍 오른쪽에 있는 둥그런 투명 플라스틱 물컵을 쳐다보니 검은색 볼펜이 보인다. 다행이다. 저 자투리 볼펜통도 없었다면 꼼짝없이 사러 가야 하지 않았겠는가? 어차피 쓰다 보면 필요한 것들 처음에 많이 사놓는다고 낭비는 아니다. 아쉬울 때에 쓸 볼펜이 대기하고 있다. 책상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내 옆모습만 보고 있을 볼펜 하나가 드디어 내 눈앞에서 매끄러운 글씨를 선보인다. 선명하게 말이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야 컴퓨터로 쓰면서 저장하는 글이긴 하지만 말이다. 뭐라고 말할까? 손으로 직접 쓰는 글씨가 나의 마음을 더 잘 표현하는 것 같다. 한 자 한 자 쓰는 순간에 내 마음속 글이 계속 바뀌면서 쓰인다. 감정이입이다. 컴퓨터자판으로 쓰는 글이라고 그렇지 않은 법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무언가가 다르다. 어쩌면 정서? 아니면 쏟는 마음? 알 수는 없지만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 나와 쓰인 글씨 사이에 무언가가 내 정신을 굳게 붙잡고는 한 글자 하나하나 힘이 들어간다.

'어깨에 힘 빼라!'라는 말이 있다. 여러모로 쓰이겠지만 글을 쓰는 데에도 통용되지 않을까 싶다. '물 흐르듯'이란 말도 역시 그런 류의 한 가지일 듯싶다.


어깨에 힘 빼고 살자. 기운을 빼라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간 부드러운 모양새로 살자는 뜻이다. '어쩔 수 없이 사는 것'과 '자연스럽게 사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 후자의 삶이 원하는 만큼이든, 아니면 부족함이 있든지 간에 누구는 만족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만족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만큼 열심히 살다 보면 나름 만족하는 날도 돌아올지 않을까? 그렇게 삶의 나이테를 쌓다 보면 설렁설렁한 구간도 있고, 촘촘히 쌓인 구간도 생길 것이다. 다 자신이 살아온 흔적, 소중하지 않은가?

오늘 베란다 밖의 날씨가 환하고 흰구름 군데군데 떠 있으니 아침 산책을 했음에도 또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의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 삶의 잉크가 떨어지면 다시 채우자. 점점 바닥이 드러나는 잉크를 다시 채우고 진한 글씨를 쓰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다시 진하게 채워나가자. 진한 마음의 잉크가 그대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비 오는 언덕길에 서서 어머니를 부르던 나는 그때 나는 소년이었다.

그 언덕길에서는 멀리 바다가 바라다 보였다.

빗발 속에 검푸른 바다는 무서운 바다였다.


어머니하고 부르는 소리는 이내 메아리로 되돌아와

내 귓전에서 파도처럼 부서졌다.

아무리 불러도 어머니는 대답이 없고

내 지친 목소리는 해풍 속에 묻혀갔다.


층층나무 이파리에서는

어린 청개구리가 비를 피하고 앉아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외로웠었다.

쏴아~

먼 파도소리가 밀려오고 비는 자꾸만 내리고 있었다

언덕길을 내려가노라면

짙푸른 동백잎 사이로

우르르르 먼 천둥이 울었다.

자욱하니 흐린 눈망울에 산수유 꽃이 들어왔다.

산수유 부하오리에서 노란 꽃가루가 떨어지는 물방울을 본 나는

그예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말았다.


자욱하니 흐린 눈망울에 산수유 꽃이 들어왔다.

산수유 꽃봉오리에서

노란 꽃가루가 떨어지는 물방울을 본 나는

그예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말았다.

보리가 무두룩이 올라오는 언덕길에 비는 멎지 않았다.

문득 청맥 죽을 훌훌 마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것은 금산리란 마을에서

가파른 보릿고개를 넘던 내 소년시절의 일이었다.



오래전에 외웠던 시 한 구절 머릿속에 떠오르기에 한 번 기억력 테스트 삼아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