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사러 갔을까?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쓰기에는 그렇고, 쓰지 않기에는 어중간한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가까운 구멍가게야 잠깐 뛰어 다녀온다지만, 낮에 갔던 곳은 조금 먼 길이다. 그래서 우산과 함께한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이다. 구멍가게는 아니고, 제법 큰 곳이다. 큰 넓이의 슈퍼라고나 할까? 우산을 들고 들이닥쳤더니, 들어가는 출입구 쪽 계산 안내원이 노려본다. 우산 씌우는 비닐이 입구 들어오는 쪽에 있다고 눈빛과는 다르게 조용히 알려준다. 그것도 손가락으로 말이다. 바닥에 떨어진 빗방울의 행진을 보고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비닐을 씌우고 다시 들어오는데 떨어진 빗방울 자국이 어느새 사라졌다. 내가 가지고 들어온 빗방울 가차 없이 날려버렸다. 정서가 이렇게도 다르다니, 매인 몸이란 정서마저 말려버리나 싶다. 아! 생각을 하지 말걸. 그것에 마음 쓰이는 사이에 살 것이 갑자기 머리에서 지워져 버렸다. 걸어올 때 계속 되뇌며 왔는데 말이다. 늘 이게 문제다. 한 바퀴 돌면서 떠올려본다. '뭐더라?' 기억과 상품을 연결해 본다. 매장의 절반쯤 돌았을까? 정육코너 앞에 있는 상품에 눈길이 간다. 서로 다른 무게의 살코기들을 담아놓았다. '저거다!' 그러면 그렇지. 내 주 먹을거리이다. 치매 걸린 나는 주음식을 고기로 대신한다. 밥은 조금 고기는 더 많이다. 고기만 먹어야 하지만 질릴까 봐 밥도 조금 챙겨준다. 그리고 '김치 조금'이다. 그거라도 감지덕지이다. 내가 너무 질려하지 않고 별 투정 없이 먹게 만들려는 아내의 깔끔한 생활의 지혜라고나 할까? 둘 다 만족이다. 빗방울 떨어지는 길, 별 투정 없이 갔다 온 답이라고나 할까? 아무려면 어떤가. 서로 만족하면 그만이다. 설거지는 내 몫, 재빠르게 해치운다. 그렇다고 대충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일기를 쓰고 달력을 쳐다본다. 많았던 휴일의 달력색깔이 다시 검은색으로 변한 이 번 한주를 살펴본다. 어김없이 검은색 투성이다. 그래 봤자 나에겐 휴일이나 보통의 날이기에 별다른 감흥은 없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달력에 표기해 놓았기에 잊기를 잘하는 나로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달력을 쳐다본다. 다음 주의 수요일과 목요일, 그리고 금요일에 눈이 간다. 다들 외부 할 동이 있는 날이다. 몇 시간 정도 되지 않지만 하고 싶은 수업을 신청해서 하는 것이기에 더 신경을 쓴다. 평생학습관하면 아는 분도, 모르는 분도 계실 것이다. 자기 취미를 가지는 활동이다. 나는 그림과 노래(합창과 사군자)에 등록했다. 치매에 좋지 않을까 싶다. 지난주에는 빨간 날이 많아 쉬었다. 이제 빨간 날의 행진은 사라졌으니 정상 수업이다. 그렇지 않아도 손도 머리도 잘 따라주지 않는 몸이라서 열심히 따라 해야 한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오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열심히 했으면 된 것이다. 잘했다고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니고, 못했다고 누가 벌주는 것도 아니다. 꾸준하게 열심히 했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뭐 내용물도 좋으면 더 이상 좋을 수 없겠지만 열심히 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할 만큼 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시나브로 밤이 왔다. 창쪽에 커튼을 쳐서 바깥의 어두움은 보이지 않는다. 조금 우습다. 어차피 어두우면 보이지 않는 법인데, 창문을 가렸다고 아쉬울 게 있는가?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있다! 밖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 어두움은 볼 수 있지 않는가? 어두움 자체도 보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다만 어두움 속을 보려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두울 땐 어두움 자체로 만족하는 것, 그게 삶의 지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