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글의 손을 잡아주고 싶은 날

-일상을 나누기-

by junetree

아픈 글의 손을 잡아주고 싶은 날


초등학교 시절(내가 다니던 시절에는 국민학교라고 했다.)에 나는 내성적이었던 아이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머니에게서 잘하는 것이 없다는 말을 늘 들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도내에서 주최한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을 했다. 글의 내용은 용돈을 아껴 쓰고, 빈 병이나 폐 휴지 등을 고물상에 팔아서 용돈을 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학교에서는 글짓기 수상작을 일주일에 한 번씩 실시하는 운동장 조회에서 녹음된 테이프를 틀어주는 형식으로 발표를 했다. 나는 동네에 하나뿐이었던 레코드 가게에서 원고 내용을 정성스럽게 녹음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월요 조회시간에 녹음된 나의 이야기가 스피커를 통해서 울려 퍼졌다. 그 글은 사실 나의 아주 내밀한 부분의 것이었다. 운동장에서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서 나의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나의 어려운 가정형편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알려진다는 것도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나의 용돈은 한 달에 천 원, 그것도 일정한 액수는 아니다.”로 시작되는 내용의 그 글을 그래서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어려운 형편이었기에, 용돈은 한 달에 천 원을 받는데 그것도 못 받는 때가 허다했다는 내용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빈 병이나 폐지 등을 고물상에 팔아서 용돈을 마련한다는 내용도 밝히기 싫었다.
그 조회가 끝난 후 옆 반의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키가 아주 크시고 항상 웃으시던 분이었다. 또한 그분은 카메라를 메고 다니시며 친구들에게 자주 사진을 찍어주시곤 하셨다.
“오늘 방송 잘 들었어! 내용이 참 좋더라.” 선생님은 칭찬을 해주셨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칭찬을 듣지 못한 나는 무척 부끄러웠다. 그리고 선생님은 제안을 하나 하셨다.
“이번에 도내 과학실험 대회가 있는데 한번 지원해 볼래?” 그것은 이제껏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나를 위해서 선생님은 과학을 잘하는 한 친구를 경시대회의 짝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과학 실험 대회의 준비를 도와주셨다. 주제가‘곰팡이 균의 활성 조건’이었던 것 같은데, 친구와 나는 식빵을 선택해서 다른 조건에서 어떻게 균이 자라나는지 실험하기로 했다. 선생님께서는 사진도 찍어주셔서 실험 관찰 노트에 좋은 사진들을 많이 부칠 수 있었다. 그러나 실험은 전적으로 내 힘으로 하게 해 주셨다. 선생님은 그저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시기만 했다. 그리고 6학년이 끝나갈 무렵에 발표가 났다. 내 힘으로 장려상을 받게 되었다.

그때까지 무기력하고 소심하게만 지냈던 내가 드디어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던 순간이었다. 이후 나는 기대감에 차서 중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중학교 때 배울 책들을 미리 읽어보고 노트들을 정리하며 앞으로 펼쳐질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후 나는 최선을 다하는 좋은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학창 시절 내내 선생님이 과학실습을 위해서 찍어주신 사진은 부적처럼 나의 책가방의 뒷면에 넣고 다녔다. 그러나 당시 나는 선생님을 찾아뵐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너무 많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학생들의 과제를 점검하면서 그들의 글을 읽게 되었다.




글로 만나는 만남은 일단은 참 진실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글을 읽으면 날것의 그가 그대로 보였다. 소심하고 소극적인 이를 만나면 그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힘들고 어려운 사연을 읽으면 글쓴이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어려운 이들의 무엇인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때 선생님도 힘들게 지내는 한 아이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나 역시도 살아가면서 힘들었던 순간마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에 선생님이 주신 사랑의 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도 못 전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교육청에서 ‘스승 찾기 프로그램’과 같은 것이 있다면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교육청의 답변은 개인정보보호로 인해서 어렵다는 것이었다. 무척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대신 내가 만나는 그 시절의 나와 같은 어려운 이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것이 선생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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