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비슷한 이야기)로 전하는 '문화와 매너'(첫번째 이야기 3월)
중학생이 되어 전학을 오게 된 나무는 아직도 모든 것이 낯설다. 친구들도, 선생님도, 교실도 모두 익숙하지 않다. 다른 친구들은 서로 같은 반이 된 것을 기뻐하거나, 다른 반이 된 것을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나무에게는 그런 친구도 없다. 전학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이기는 하지만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도 늘 그랬다.
이른 봄의 옅은 햇살이 거리를 환하게 비춘다. 나무는 집 앞까지 느릿느릿 걸어와서 조금 열린 대문의 문틈으로 집안을 살며시 들여다본다.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아 봄 햇살을 맞고 계신다. 서울에서 데려왔다고 ‘서돌이’라고 이름을 지은 누렁이가 졸고 계시는 할아버지의 다리를 핥고 있다.
그 집은 지은 지 꽤 오래된 이층의 주택이다. 나무가 이곳에 살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무는 동생 숲이와 서울에서 살다가 엄마와 아빠가 잠시 따로 사시면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엄마는 공부를 위해서 영국으로 가시고, 아빠는 서울에서 사업으로 바쁘다.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나무와 숲이도 잘 알고 있다. 이 집에는 얼마 전 까지도 나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고모가 살았다. 그러나 항공사의 객실승무원이 된 고모는 서울로 갔다. 이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사시게 되었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승무원 복장을 한 고모가 골목 끝에서부터 바퀴가 달린 큰 가방을 끌고 온다. 나무를 보자 고모는 반갑게 손을 흔든다. 고모가 일하는 객실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나무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빠가 ‘직업체험 승무원!’이라는 책을 사주셨기 때문이다. 나무는 승무원이 하는 일보다는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그 나라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부러웠다.
“와! 나무야! 반가워. 들어가자. 내가 이번에 터키의 이스탄불에 가서 젤리를 좀 사왔거든. 나무와 숲이에게 주려고 일부러 더 많이 사왔지. 우리 같이 먹자.”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모가 들어가자마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오신다. 두 분은 고모를 보시더니 한 달 만에 본다며 반가워하신다. 이제 5학년이 된 숲이는 아직도 집으로 오지 않았다. 숲이는 학교가 끝나기만 하면 친구들의 집에 가려고 한다. 그 때문에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곤란해 한다는 이야기를 숲이의 담임 선생님이 해주셨다. 오늘도 또 누군가의 집에 갔을까? 나무는 늘 숲이가 궁금하다.
고모는 거실에 앉아서 커다란 여행 가방을 열었다. 고모의 가방 속에서 먼 도시인 이스탄불의 냄새가 쏟아졌다. 가방 속에서 물건을 꺼내는데, 마침 숲이가 들어왔다.
“야! 우리 숲이 많이도 컸네. 이리와. 고모가 선물 줄게”
고모는 젤리를 숲이의 입속에 쏙 넣어준다. 밝은 노란색 빛이 숲이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레몬 맛이다.
“어! 이게 뭐야. 아이 너무 시잖아.”
숲이가 한 입 깨물더니 소리를 지른다. 나무도 상자에 담겨있는 젤리를 입에 넣었다. 젤리를 물자 장미향이 은은했다.
“너무 맛있어요.”
“묵고 있는 호텔방에 갔더니 침대 옆의 테이블위에 작은 접시에 처음 보는 젤리가 놓여 있는 거야. 새로운 거라 뭔가 궁금했지. 그런데 공항에 갔더니 그 곳 면세점에도 많더라고. 알고 보니 유명한 젤리인데 터키시 딜라이트(Turkeysh Delight)라고 한대.”
숲이는 젤리를 보자 언젠가 누나와 함께 보았던 ‘나니아 연대기’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그 영화는 C.S.루이스의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 원작이다. 영화 속에서 ‘눈의 마녀’는 젤리를 준다.
“이 젤리는 터키에서는 로쿰(Lokum)이라고 불린대. 설탕에 전분과 견과류를 넣고 만들었지. 터키나 서남아시아부근에서는 꽤나 유명하다고 해.”
고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무는 오렌지 색의 젤리를 하나 더 입에 넣었다. 하얀 눈 위에서 젤리를 입에 넣던 에드몬드가 생각났다. 둘째왕자가 형을 배신할 만한 맛이라고 생각했다.
가방을 다 풀고 나서 할머니와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눈 고모는 나무와 숲이에게 방을 보여주겠다고 제안한다. 나무와 숲이는 아직까지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던 고모의 방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에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많은 기념품들로 가득했다. 방문에는 커다란 천을 걸어놓았다. 벨기에의 브뤼헤에서 샀다고 하는 흰색의 레이스 위에는 세계 각 나라에서 가져온 작은 스푼들이 걸려 있었다. 하와이 스푼에는 파인애플이, 뉴욕 스푼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동경의 스푼에는 스시가, 호주에는 코알라가 들어있었다.
“야호! 여기는 신세계다.”
숲이가 고모의 침대에 올라가서 뛰면서 소리친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인형을 숲이가 신기한 듯이 만졌다. 아래는 볼록하고 위로 갈수록 오목해지는 오뚝이를 닮은 인형이다.
“너희들! 이 인형이름을 혹시 아니?”
고모가 인형을 만지는 숲이에게 물었다.
“네 마트료시카(Matryoshka)라고 하죠. 러시아 인형이요!”
나무가 숲이 대신 대답했다.
“그래 마트료시카야.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기도 하지. 그런데 이 인형은 원래는 일본에서 널리 사랑을 받았던 인형이야.”
마트로시카가 일본에서 사랑받았다는 이야기에 나무는 깜짝 놀랐다.
“어머나! 러시아 인형으로 유명하던데 일본과 관계가 있었네요.”
“나무는 아주 잘 아네. 1890년 어린이 책 삽화가였던 러시아의 세르게이 말류틴이 일본에서 들여온 기념품인 칠복신 목각인형을 보게 되었대. 그리고 그 중에서도 긴 중국 옷을 입고 대머리에 배가 볼록 나온 모양을 한 가장 큰 인형 ‘후쿠로쿠쥬’에 흥미를 느낀거지. ‘후쿠로쿠쥬’는 노자에 기초한 도교신을 형상화한 인형으로 행복과 부와 장수를 상징해. 그는 그 인형을 지금의 마트료시카로 바꾸어 디자인 했지. 숲이야! 한 번 열어볼래.”
숲이가 빨간 바탕에 노란 얼굴의 인형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작은 인형들이 일곱 개나 더 들어있었다. 가장 작은 인형은 나무의 엄지손가락만큼이나 작았다. 마지막 인형은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 숲이가 커다란 인형에서 나온 작은 것들을 방바닥에 한 줄로 늘어놓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이름이 마트료시카예요?”
“어머니를 의미하는 라틴어의 ‘마테르(Mater)’에서 기원했어. 원래 시베리아에서 여신을 금상으로 만들어 그 속에 똑같은 여신들을 차곡차곡 집어넣던 민간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해. 작은 인형은 보통 대 여섯 개정도 있는 것이 보통이고, 큰 것은 열 다섯 개까지도 들어가지.”
“와! 열 다섯 개까지요? 진짜 대단하다.”
“응. 가장 큰 바깥 인형은 어머니를 상징해. 그 속의 인형들은 계승될 다음 세대들로서 모계적 다산성을 의미하지. 러시아에서 어머니는 대지이고, 대지는 곧 어머니를 상징해.”
숲이는 신기한 지 가장 작은 마지막 인형까지 들어서 자세히 살폈다. 나무와 숲이는 고모의 방을 구석구석 구경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얘들아! 세계문화를 아는 것은 중요해. 오늘 우리가 보고 이야기를 나눈 것들은 그 나라의 작은 상징물들이라고 말할 수 있지. 문화는 이렇게 물건들 말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것들이 있어. 오늘 우리가 이렇게 다른 나라의 물건을 알아보았지만 우선은 우리 자신을 아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
“맞아요. 난 우리나라 태극기를 좋아해요.”
숲이가 말하자 나무도 말했다.
“난 한복과 한옥 그리고 맛있고 쫄깃하고 부드러운 떡도요.”
“그래. 그럼 우리 이렇게 할까? 우리 한 달에 한번 씩 여기에서 만나자. 내가 외국의 문화이야기와 거기에 따라 지켜야 할 매너도 이야기도 해주고 그럴게. 어때?”
“네. 좋아요.” 나무와 숲이는 서로 말하며 웃었다.
“다른 문화를 알려면 우선 다양한 사람과 인종과 문화를 이해해야 돼. 아까도 말했지만 자신을 아는 것이 우선이고 말야. 자신을 갖고 그들을 대하면 다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어. 그럼 다음엔 우선 우리나라의 이야기부터 해볼까? 다음번 만날 때는 우리나라 문화의 상징물들을 하나씩 가져오자.”
고모는 나를 알고 다른 이들과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했다. 겉으로 보이는 강대국이나 높은 사람에게 열등감을 갖지도 말고 우리보다 약소국이나 약한 사람에게 우월감을 갖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사람이나 문화의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이해해서 성공적인 만남을 이루어내야 한다고도 했다.
고모의 이야기에 나무는 입에 물고 있었던 로쿰이 더욱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고모의 방에서 나와 나무와 숲이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무의 침대 옆에는 커다란 세계지도가 붙어있다. 나무는 매일 밤 자기 전에 그것을 보며 지도 속의 장소들은 어떤 곳일까 상상도 해보고,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도 해보았다. 가끔 나무의 꿈에서는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했다. 이젠 그 사람들을 고모의 이야기 속에서 생생하게 만날 수가 있다. 나무는 고모와의 만남을 조금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만나고 난 후 더 공부해서 메모를 하기로 했다.
아침마다 나무의 방에 있는 동그랗고 작은 창으로는 커다랗고 빨간 해가 뜨는 것이 보인다. 그 해는 세계지도 안의 그 어디에나 골고루 비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