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나누기-
미국에 살고 계신 고모는 팔순을 넘기셨다. 아마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오트밀이나 과일로 간단하게 아침을 드시고 정원 가드닝을 하신후 넓은 바다를 바라보시면서 책을 읽으실 것이다.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사용하시는 방에는 높고도 넓은 다락방이 있었다. 나는 그 방에서 젊은 시절의 고모의 사진들을 보았다. 1960년대에 미국으로 가신 고모는 당시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어떤 여배우보다도 아름답고 멋있었다. 다락방에는 고모가 두고 가신 물건들로 꽉 차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나는 별도의 방을 가질 수가 없었고, 다락방은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되었다.
‘미국고모’는 한국에 자주 오시지는 않았다. 대신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어느 봄날부터 내게 아주 좋은 옷들을 보내주셨다. 당시에는 ‘교복 자율화’라는 제도가 시행되어서 학생들이 사복을 입고 학교에 다녔다. 보내주시는 옷들은 집안 형편에 비해 지나치게 좋은 것이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 옷은 내가 절망하지 않고 자존감을 가지고 생활하도록 도와주었다.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꿈을 잃지 않게 했다.
그 다락방에 나 있었던 조그만 창이 기억난다. 그 창으로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보면서 대학을 졸업하면 미국에 가서 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도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정말로 로스앤젤레스로 출장을 가서 ‘미국고모’를 만났다. 집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 마을에 있었다. 그곳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한국으로 가기 마지막 날, 새벽에 일어나 정원에 나와서 넓고 커다란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 시절이었다. ‘나는 이 거친 인생이라는 바다를 지혜롭게 건널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몹시 불안해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른 새벽 바다를 보고 들어 온 내게 ‘미국고모’는 에이미 탄의 ‘조이럭 클럽’이라는 책을 주셨다. 아직도 나는 그 책의 “네가 울면 네 인생은 항상 슬플 것이다. 네 눈물은 네 슬픔을 씻어가 버리지 못한다.”라는 구절을 기억한다. 이후 근처의 카페에서 고모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즈 오믈렛을 먹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네가 울면 네 인생은 항상 슬플 것이다. 네 눈물은 네 슬픔을 씻어가 버리지 못한다.”
라는 문장을 오랫동안 생각하곤 했다.
오십이 넘은 지금도 나는 살아가는 일은 바다를 건너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날 그 곳에서 보았던 물결이 거셌던 그 검은 새벽 바다를 기억한다. 그리고 어느 봄 날 기적과도 같이 그 바다를 건너서 찾아왔던 고모의 고마운 선물도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넓고 푸르게 펼쳐진 바다를 볼 때면 희망을 발견하곤 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관계로 인한 호칭이 이름이 될 때도 있다. 누군가의 엄마나 아버지, 아들, 딸, 고모, 조카, 친구, 할머니, 손자 등과 같이 말이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를 건너고 있는 순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내게 고모가 그러셨듯이 누군가의 삶을 위해서 가장 좋은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내게도 이름이 되어버린 호칭들이 있다. 나는 그 이름에 얼마나 적합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해본다.
요즘에도 고모는 한국의 책들을 읽고 싶어 하신다. 가끔은 내게 책들을 이야기하시면 보내드리기도 한다. 나의 어떤 날에 ‘미국 고모’가 보내주신 옷들이 나의 삶의 희망이 되었었다. 내가 보내드리는 책들이 그저 그분께 ‘작은 위안’이 되길 원한다. 나른한 오후에 정원 벤치에 나와 반짝이는 태평양을 바라보면서 내가 보내드린 책장을 넘기며 가끔은 오수를 즐기시기를, 그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