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젊은 시절에는 '편지'가 남녀 사이에 마음을 전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핸드폰도 없으니 문자를 할 수도 없었고 삐삐도 막 유행하기 전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은 있지만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에는 그 사람의 진심이 묻어 있었다. 군에서의 펜팔도 유행이었다. 잡지 뒷면엔 의례 펜팔 란이 있어 그 주소로 편지를 보내곤 했다. 주로 아파서 의무반에 며칠 대기하는 동안에 편지를 쓰곤 했다.
꼭 2,3통은 답장을 받은 기억이 있다. 편지는 군 생활 내내 이어졌다. 당시 편지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외로움을 극복하는 최고의 약이었다.
와이프와 교제시에도 편지는 중요한 의사 표현 도구였다.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고 기념일이면 꼭 마음의 편지를 전하곤 했다. 결혼 후 와이프가 보여준 편지만도 수십 통이었다. 편지는 그대로 우리 기억 속 보물이 되었다.
고흐가 그의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글인 < 반 고흐, 영혼의 편지>도 감명스럽다. 동생이라기보다는 영혼의 단짝으로 많은 부분을 공유했다.
신영복 교수의 30여 년 옥중에서의 편지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도 젊은 시절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저자의 쓸쓸한 글들이 보인다.
최근 읽은 책 <만남, 그 신비>는 안영 소설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실비아와 라파엘의 50여 년간 이어진 영적 교류를 편지글 형식으로 묶었다.
편지는 곧 그 사람이란걸 알 수 있다. 그 속엔 그들의 열정, 사색, 언어, 친밀감, 정이 깃들어 있다. 그 글엔 미처 다하지 못한 사랑, 걱정, 안쓰러움, 고마움이 들어있다.
가수 어니언스의 '편지' 노래를 들어보면 그 아릿한 가사에 푹 빠져든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 내려간 /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금세라도 그들의 순박한 사랑에 가슴 뭉클해진다. 이토록 순수한 사랑의 감정은 누구나 한번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감정은 그 시절을 소환한다. 당시 와이프에게 전했던 마음의 노래, 편지 같은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내가 전에 말했잖아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 당신은 모르실 거예요
얼마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 터질 거예요 내 가슴은
당시의 애틋한 심정을 알아 달라는 메시지의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들어 알아차리든 아니든 말이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우리 마음속 감정은 그대로다.
우린 가끔 눈빛으로 편지를 쓴다. 눈빛으로 말한다. 그리고 그걸 못 알아챈다고 서운해한다. 척 보면 척 아는 것은 없다. 그것은 항상 생각하는, 기대하는 사람 혼자만의 착각이다.
그 시절 편지로 직접 표현한 것처럼 요즘 세상은 원하는 도구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지금은 오히려 카톡, 문자, SNS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현할 길도 많아졌다. 예전 편지를 전해주던 순수하고 수동적인 자세로는 이제 사랑을 쟁취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사연 깊은 그 시절 편지의 추억은 더 소중하다.
(이 편지글에서의 오타나 구성은 보지 마시길, 원본에 충실하게 옮겨 적었기에)
위 글은 10분아침일기의 실제 한편이다. ‘10분 아침일기’는 10분이란 시간을 정하고 노트한면을 채우는 글쓰기다.글감은 그날 그날 갑작스럽게 생각난 단어나 그 전에 알고 있던 단어 중에서 무작위로 택한다. 그러다 보니 글이 중복되기도 하고 정돈되지 않지만 그게 또 아침 글쓰기의 매력이다. 나중에 필요시는 퇴고를 하면 그뿐이다. 글을 쓰기 위해 미리 메모하지는 않는다. 날것의 생경한 단어들이 튀어나와도 좋다. 또 글을 쓰다보면 주제가 빗나가 배가 산으로 가는 글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펜이 가는 대로 글을 쓰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다 보면 내 속에 체화된 감정들이 글이 된다. 그 글은 어릴적을 소환하고 현재를 거치다 미래를 유영한다. 그 속에서 나는 현재를 더 분명히 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어려워 하는 독자들이 내가 쓴 글을 통해 글감을 얻고 글쓰기를 연습함으로써 스스로의 글이 향상되는 기적을 꿈꾸기를 소망한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다른 독자가 생을 살아가는 힘을 얻고 글쓰기의 기쁨을 누릴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 실제 편지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