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에 집중하며 걷는 시간

물웅덩이를 피하며

by 사이



오늘은 머릿속이 복잡해서 비가 오는데도 밤산책을 나섰다. 밖에 나서자마자 퍼지는 비냄새가 좋아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습기, 젖은 흙냄새, 우산 위로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와 그 진동. 그 모든 것이 힘들고 속상했던 내 마음을 조금씩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늘 걷던 산책로가 아닌, 익숙한 길을 목적 없이 걸어보았다.

마트도 지나고, 자주 가던 카페도 지나고…

그러다 필요한 걸 사러 잠깐 들르기도 하고, 그렇게 천천히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다이소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고 필요한 걸 산 뒤 나오는데, 비가 갑자기 거세게 퍼붓기 시작했다.

거리엔 금세 물웅덩이가 가득 고였고, 물이 빠르게 불어나면서 길가에 깊은 웅덩이들이 생겨났다.



나는 그걸 피해 다니느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저 웅덩이를 피할 길을 찾느라 바빴다.


옷과 가방은 점점 젖어갔고, 신발도 축축하게 물을 먹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스며든 빗물이 다시 양말을 적시길 반복했다. 슬슬 짜증이 올라오려던 순간, 문득 비 오는 날 짜증 내던 친구들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냥 젖는 것뿐이잖아. 집에 가서 말리면 금방 마르는 걸.”


그건 매 순간을 즐길 줄 알던, 어린 날의 나였다.

나는 힘든 순간을 무리하게 바꾸려 하기보다는,

‘그럼 지금 이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뭘까?’를 스스로에게 묻던 사람이었다.


그걸 잠시 잊고 지내다가, 오늘 오랜만에 만끽했던 비와 여유로움 사이에서 그때의 나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집에 다다를수록

‘얼른 샤워하고 젖은 옷을 걸어놔야지’하고 생각했다. 도착하자마자 후드집업을 벗었더니 모자에 고였던 빗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바지랑 양말도 바로 벗어 걸어두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계속 반복되던 고민들도, 스스로를 자책하던 생각들도 잠시 멈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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