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치 당신이 영원한 사람인 것 처럼
‘동화 같은 사람’
엄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엄마는 내게 동화 같은 유년시절을 선물해 준 사람이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을 준 사람이다.
봄이 되면 함께 산책하며 돌틈에 낀 풀꽃들의 이름을 알려주고,
여름 장마철이면 우산 없이 밖으로 나가 온몸이 흠뻑 젖을 때까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감촉을 알려주었으며,
가을이 오면 떨어진 낙엽과 나뭇가지를 모아 스케치북 위에 풍경화를 함께 그렸다.
겨울이 되어 눈이 쌓이면, 깊이 잠든 나를 깨워 흰 눈을 만끽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계절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반기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는 밝고, 낙천적이고, 자유롭고, 소녀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현실을 마주하게 된 후부터는 세상을 좋게만 보는 엄마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현실의 어려움을 충분히 알려주지 않은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넌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만 보는 것 같아.”
친구의 가시 같은 말에 상처를 받았을 때 나는 엄마를 탓했다.
자취를 시작하고 본가와 멀어진 시간이 쌓이면서 엄마와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정확히는 내가 거리를 두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엄마의 잔소리는 간섭처럼 들렸고, 가치관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나를 답답하게 했다. 엄마도 그런 내 감정을 눈치챘던 걸까, 어느 순간부터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월요일에 엄마 00이 보러 가도 돼?”
엄마가 본가에서 내가 있는 곳으로 내려온다고 하셨다. 그런데 또 날씨 때문에 약속을 미루셨다. 나름 이런저런 스케줄을 조율하고 있었는데 일정이 틀어지니까 짜증이 났다. 엄마의 변덕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말다툼을 피하려고 그냥 넘겼다.
“알잖아. 우리 엄마 맨날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 이번엔 월요일에 온다고 했는데 그날 비 온다고 목요일에 오겠대. 에휴…"
엄마가 내 개인적인 일정은 안중에 없는 것 같다면서 친구에게 푸념하며 속을 풀었다. 이전 같았으면 엄마가 온다고 했을 때 계획도 짜고, 집정리도 하고 나름의 준비를 했을 텐데 이번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열심히 시간 들여 여행계획을 짠다고 한들, 엄마의 변덕에 따라 금세 틀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으니 맛있는 식당에 데려가고 싶었다. 전업주부로 지내며 바깥활동이 적은 엄마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맛있는 걸 잔뜩 먹고 잘 준비를 마쳤는데,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나온 엄마가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어쩐 일인지 엄마 입가가 잔뜩 부어있었고, 온몸이 가렵다며 긁는 피부에 울긋불긋 빨간 반점이 흐리게 올라오고 있었다. 당장 병원에 가야 할지 상태를 지켜봐야 할지 고민할 틈도 없이 엄마의 입과 눈이 빠르게 붓기 시작했고 혀까지 붓기 시작해서 혹시 기도가 막히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서둘러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오늘 뭐 드셨어요? 다른 질병이나 알레르기 있으세요?”
오늘 먹은 음식이 엄마는 다 처음이라 먹은 것들을 다 말씀드렸고, 상태를 묻는 의사 선생님 말에 머뭇거리며 대답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머리를 크게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어… 얼마 전에 유방암 검사를 했는데 종양이 발견되긴 했는데요. 그것도 말씀드려야 하나요?”
엄마가 그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쥐어뜯었다. 다행히 악성종양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내가 모르는 새에 혼자 얼마나 많은 걱정을 안고 있었을까 싶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엄마는 주사를 무서워하신다.
링거 바늘을 꽂는 동안 눈을 꼭 감고 손끝을 움켜쥐었다. 그런데 채취한 혈액이 굳어서 피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두 번이나 주사를 맞으며 아이처럼 벌벌 떠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약하고 어려 보였다.
간호사 분들이 엄마 가슴에 이것저것을 달아주셨고, 정신없이 상황이 1 단락 진정되었을 즈음, 환자복을 입은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환자복을 입고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니 낯설고 두려웠다. 좀 전에 종양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탓에 더욱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옆 침대에는 엄마와 나이가 비슷한 아저씨가 누워있었는데 그 순간, 엄마가 나이 들었다는 것이 문득 실감 났다. 우리 엄마는 항상 젊은 모습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주름이 자리 잡았을까.
몇 시간 뒤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기도가 부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적어도 아침까지는 병원에서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엄마는 정작 자신의 몸 상태보다 내 걱정을 더 하셨다.
“00이 자야 되는데… 내 새끼 하품하는데…”
엄마는 새벽 내내 실눈을 뜨고 내가 잠들었는지 확인했다.
10시부터 2시까지 좋은 호르몬이 나온다고 그때 잠 못 자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잔소리를 하던 엄마가, 자기 때문에 내가 못 자는 게 미안하다는 듯이 계속 나를 바라봤다. 결국 둘 다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되자 엄마의 상태가 조금씩 나아졌다. 그래도 계속 경과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엄마를 혼자 두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엄마에게 며칠 더 있다가 본가에 올라가라고 했지만, 엄마는 좁은 자취방에 둘이 지낼 공간이 마땅치 않고 돌아가서 할 일이 많다며 오늘 가겠다고 하셨다.
자취방으로 돌아와서 간단히 죽과 약을 드시고, 한 잠 주무시고 일어나니까 다행히 엄마의 몸상태가 또 한결 나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걱정이 되었지만 덕분에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내 방을 나가기 전에 바닥을 쓸고 닦으며 집을 치우셨다.
그리고 거울을 닦으며 했던 엄마의 혼잣말
“예쁜 우리 아기 얼굴 잘 보여야지”
이 한마디가 내 가슴에 박혀서 아직도 떠올리면 눈물이 핑 돈다.
본가를 떠나 산 지, 햇수로 벌써 6년째가 되었는데 그동안 잠시 그 사랑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영원한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엄마만큼은 영원할 거라고 착각했다.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만 같고, 어디서든 내가 찾으면 반겨줄 거라고.
오늘 병원에 누워계시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엄마가 영원히 내 곁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내게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을 주던 엄마.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당연하게만 여겼던 엄마의 존재가, 사실은 나를 위해 모든 걸 내어주며 헌신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말이다.
PS.
집에 혼자 돌아와서 씻고 머리를 말리려는데 잔뜩 꼬여있던 드라이기 선이 다 풀려있었다.
“드라이기 선은 원래 이렇게 꼬여있어?”
“어. 귀찮아서. 그냥 그대로 둬”
엄마가 풀어두셨나보다. 엄마가 자취방에 다녀가면 남긴 흔적들에 자꾸 마음이 아리다.
단단하게 먹은 마음이 자꾸만 물러진다.
날짜를 미룬 것도, 아마 추운 날 돌아다니면 내가 감기에 걸릴까 봐 날짜를 미룬 것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그런 마음을 자꾸 꼬아 듣는 내가 미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