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불안: 장면과 소외⟫ 김재연 개인전 전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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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공간불안
지난 해 안팎스페이스에서 일주일간 진행되었던 《공간불안》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전시의 주체로 기획자나 작가가 아니라 공간 운영진이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다. 안팎스페이스의 공동 운영진 2인(박주원, 안재우)은 약 1년간 전시공간으로 운영된 안팎스페이스 내부와 그 일대 거리에서 사물들을 수집한 후, 물건들을 일주일 동안 서로 번갈아가며 공간 이곳저곳에 두었다. 그들은 공간을 반복적으로 여닫고 전시를 여러 번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버려진 것, 어딘가에 박혀 있던 못, 고장난 에어컨의 부자재 등을 모았는데 서로가 어떤 사물을 선택했는지는 그것들이 공간의 바닥이나 벽면이나, 천장 부근에 놓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이로 인해 《공간불안》은 완성된 작품들을 계획대로 알맞은 곳에 배치하는 그간의 전시와는 달리 전시공간에서 출현할 수 있는 물질들에 기대어 진행하는 피드백, 혹은 물건으로 하는 대화라는 과정을 추구했다. 《공간불안》에는 전시공간에서 발견되었다고 쉽게 연상할 수 없는 물건들도 있었는데, 역으로 생각해보면 전시공간이기에 있을 법한 사물이었고 운영진들에 의해 소환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대화가 종결되면 다시 쓸모없는 물질로 되돌아간다는 점에서 전시는 그들에게 임시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말 그대로 불안한 기운이 돌고 있는 공간의 상태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프로젝트는 소외된 것에 주목했지만 다시 소외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유용함의 한계, 쓸모있음-쓸모없음의 회색지대에 놓인 것들을 뒤집어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1. 장면과 소외
무용함의 허무에 주목한 프로젝트로부터 파생된 《공간불안: 장면과 소외》는 사진작가 김재연의 능동적인 고민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동네의 산을 오가며 보았던 나무나 식물의 면면과 같은 자연의 요소들을 세밀하게 관찰한 다음 사진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한 <0그램 드로잉> 연작은 필름 위에 씨앗을 올려 스캔하는 기법을 거쳐 숲 속을 거닐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순간의 감각을 표현한 작업이었다. 반면 <무너지고 쌓이는> 연작은 근 3년간 제작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진들을 보면 그간 실제 풍경을 포착해왔던 작가의 작업과는 대조적으로 순간의 빛이 감지된 듯 구현된 추상적 화면을 확인할 수 있다. 김재연은 주로 집에서 촬영한 사진 위에 채집한 식물이나 열매 등을 스캔하여 시아노타입(cyanotype) 과정을 거쳐 차츰 쌓아올린 후, 디지털 콜라주 기법을 활용해 사진을 최종적으로 완성시켰다.
작품들은 일시적인 공기의 흐름이나 특정한 온도의 대기처럼 시각적으로 감지하기 어려운 형상처럼 보인다. 객관성을 보증하는 사진 매체를 향한 기대감과는 다르게, <무너지고 쌓이는>은 기운으로만 감각할 수 있는 애매모호한 ‘무언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무언가’들 역시 각인된 이미지이기에 역설적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실패한 어둠>(2023) 연작 역시 추상적인 이미지로 완성되었다. 시리즈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작품들은 촬영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시간대와 환경에서 제작되었다. 전시에서는 <실패한 어둠> 시리즈를 좌대에 올려두고 벽에 부착하여 수평 혹은 수직적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배치하였는데, 하늘을 촬영한 사진임에도 내려다볼 때는 종이 위에 드로잉을 한 것인지, 검은 종이 위에 무언가를 올려두고 스캔을 한 것인지 그 과정을 잘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 임의로 실패함을 좇은 작가의 의도와 맞물린다. <실패한 어둠>에 관한 작가 노트에 등장하는 ‘밤의 자국’이라는 표현을 마주하며 밤의 자국을 본 경험을 자문해본다. 낮에 볼 수 있는 먼지, 안개, 빛의 일렁임은 밤이 되면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대기를 떠다니는 물질들은 언제나 주변에 있기에, 김재연은 <실패한 어둠>을 통해 빛이 없는 상태에 소거된 것들을 불러온다.
안팎스페이스의 《공간불안》이 주변의 버려진 사물들을 재소환한 장이었다면 김재연은 어둠에 묻혀 있던 것들을 형상화한다. 소외의 기준은 상실 혹은 망각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이나 감각에 따라 수동적으로 내몰리게 된 것임을 기억하며, 작가는 의도적인 실패를 경유해 잠깐 사라졌던 것만 같은 물질들을 복원해낸다.
<실패한 어둠> 연작이 카메라로 세상을 포착하는 방식을 조금씩 변주해온 일대기의 현재라면, 전시장 곳곳에 프린트되어 선반과 창틀 가까이에 놓인 <부스러기 이미지> 연작은 김재연의 일상 단면을 기록하고 있다. <실패한 어둠>이 액자나 선반 위해 가지런히 놓인 반면, 이 사진들은 그보다는 자유롭게 진열되어 있는데, 집의 벽지에 맺힌 햇빛의 흔적이나 베란다의 풍경은 머릿속에 산재한 기억의 파편처럼 전시장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집 공간의 안락함이 답답함으로 전환된 이유는 바깥 세상의 어떠한 질병과 같은 사회적 재난일 수도 있고, 작가와 엄마라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촉발된 것일 수도 있다. 그간 자연의 물질과 분위기를 담아내기 위해 실외 환경 속을 걸었던 작가는 벽으로 둘러싸인 실내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사적인 피사체를 담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두 시리즈는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지만 서로 다른 과정을 거친 이미지로 완결되었다. 작가는 사진 매체에 대한 의문과 함께 지난 작업 방식을 반추하며 실험적 태도로 외부를 포착한 한편, 가정의 한 일원으로서 카메라를 들고 사적인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2. 낮과 밤
오후 3시부터 밤 9시까지의 전시 시간 동안 낮과 밤의 전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환한 빛이 창을 관통해 사진 위에 맺히는 모습, 적막해진 북아현동의 정취 속에서 고요히 자리한 사진들은 같은 전시임에도 몹시 다른 분위기를 형성한다.
낮에는 전시장의 흰 벽에 대비되었던 <실패한 어둠> 사진 하나하나가 검은 점처럼 선명히 보였다면 하늘이 어두워질수록 어둠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간다. 테이블 위 <부스러미 이미지> 더미북을 읽다보면 조도 낮은 조명 아래에서 사진들에 몰입하는 시간으로 넘어간다. 한결 조용해진 거리 위의 전시공간에서 사진을 감상할수록 작가의 내밀한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일부러 밤하늘을 찍어 우연을 의도한 결과물이나, 집안 곳곳에서 포착된 장면들은 선뜻 보여줄 수 없는 이미지들이다. 김재연이 말했듯 <실패한 어둠>의 경우 ‘잘 찍은 사진’이라 부를 수 없는 작품들이며, 일상의 정취가 느껴지는 <부스러기 이미지>는 작가의 사적 모습이 그대로 기록되어 이전 연작들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 그리고 누군가의 가족으로 평행하던 역할이 한 공간에 모여 뒤섞였고, 두 입장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어두움이 내려앉은 공간 속에서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김재연의 두 주요 연작들은 촬영의 방식도 피사체의 선택 과정도 다르지만 내면의 고민에서 추동된 섬세한 사진이 되어 고요하게 관객에게 다가간다.
사진이 현실세계의 것을 담아냈으리라는 분명한 믿음은 어쩌면 사진으로 포착된 이미지를 감상하는 한계가 될지도 모른다. <무너지고 쌓이는>에 이어 <실패한 어둠>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작가가 맨눈으로 포착되지 않는 것들을 담아내려 한 시도는, 우리의 눈을 대리하는 도구로서 카메라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는 영역을 사진으로 끌어온 시도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공간불안》을 떠올리며. 운영진은 공간에 방치되어왔던 사물들을 선택해 설치하였다. 구획된 공간 안에 사물을 늘어놓았던 행위, 관객이 그들 사이를 오갔던 동선, 전시의 구성과 완성에 수반된 움직임들은 공간 안에서 공회전 하고 있었다. 《공간불안: 장면과 소외》에는 지속적으로 사진을 찍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왔던 김재연의 이미지가 맴돌고 있다. 실패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실패한 사진을 어떻게 촬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작가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눈에 보이는 것을 어떻게 포착할 것이며, 포착하였는가? 작가의 자문은 안팎스페이스 운영진이 사물을 고르며 떠올렸던 의문과 공명한다. 그것은 일상에 있지만 보지 못했거나, 드러내지 않았거나, 숨겨왔던 것들을 보여주고자 했던 목표를 함의한다. 그리고 이 두 전시는 관객에게 어디에서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발굴할 것이라는 소명을 일러준다.
⟪공간불안 : 장면과 소외⟫
2024.04.09-04.30
3 p.m. — 9 p.m.
(월요일 휴무 | Monday closed)
작가 | 김재연
기획 | 박주원
가구 디자인 | 안재우
그래픽 디자인 | 윤혁 @hyeok.info
집기 제작 도움 | 안유건 @yugeon_ahn
자문 및 리뷰 | 강다원 @daoneekang
서문 번역 | 임아진
주최/주관 | 안팎 스페이스
✳︎이 글은 ⟪공간불안: 장면과 소외⟫(2024, 안팎스페이스) 전시 리뷰로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