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ming Plastic

도정윤 작가 비평

by 다원

Booming Plastic


•정지한 폭발

폭발을 상상해 보자. 어떤 물체가 터질 때, 그 현장에 가까이 서 있는 우리는 주변 공기를 데우는 고열을 온 피부로 느끼고, 번쩍이는 섬광을 눈으로 보고, 발 딛고 선 땅의 진동이 몸에 전달되는 것을, 귓속이 떨리는 굉음을, 신체를 뚫고 진입하는 감각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가 터진 이후 폭발에 관한 진술을 위해서 꽤 섬세한 표현이 필요하 다. 이 일련의 과정 중에서 ‘가장 폭발과도 같은 순간’을 고르는 것은 꽤 어렵다. 누군가는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조 각들을 목격할 때를 말할 수도, 누군가는 열과 소리의 진동을 피부로 느낄 때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나는 도정윤의 작업을 폭발의 절정에 가까운 조형물이라 부르고 싶다. 분출은 너무나 찰나의 순간이라 기록 도구의 힘을 빌리지 않는 한, 그러한 장면을 소유하기 어렵다. 어쩌면 순간성이라는 폭발의 특징은 그 활동을 더욱 파괴적으로 느끼게 하는 데 힘을 실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멈춘 조형물로 구현된 도정윤의 작품들은 연속되어 터지는 작용 의 한 점으로, 오래 그 장면을 간직하며 다시 보기를 가능하게 한다.

도정윤의 몇몇 작품들은 작은 물체가 압력을 받아 터져버린 조형물처럼 보인다. <꽃꽂이>(2023)를 구성하는 주된 재료는 플라스틱 제품이다. 수직적으로 허공을 향해 뻗어 나가는 탄력적인, 혹은 비탄력적인 각각의 재료들은 파란 색 쓰레기통 안에 담겨 있다.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물건들은 폭파하는 찰나의 순간처럼 보이지만 조형물은 비교적 고정적이므로, 관객은 장면을 기록하는 도구 없이도 찰나의 순간을 여러 각도에서 경험할 수 있다.

나무 패널 위에 종이를 주재료로 콜라주를 시도해 온 도정윤은, 납작한 종이 뿐 아니라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연출을 시도했다. 사진, 색종이, 포스트잇 등 종이를 활용한 콜라주 <정의할 수 없는 경계>(2023)에서 작가는 원본 이미지에서의 구체적 형상에서 멀어지도록 작게 조각내 패널에 배치하였다. 이러한 콜라주 작업을 진행하며 작가는 사진에 담긴 물체의 모습보다는 그것이 담고 있는 색에 주목하였고, 특정한 색을 지닌 포스트잇과 색종이를 함께 한 화면 내에 위치시켰다. 여기에서 사진은 본래 지녔던 기록이나 증빙의 역할보다는 함께 사용한 다른 재료들과 마찬 가지로, 색을 지닌 물질로 사용되었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전체 화면에서는 종이-사진-물감 재료 사이의 구분이 흐 려져, 산발된 색 면의 경계만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정의할 수 없는 경계>와 <Metamorphosis>는 모두 비슷한 재료로 제작되었지만, 비교적 최근에 제작된<Metamorphosis>에서 작가는 나무 막대로 만들어진 수직과 수평의 구조물을 화면 곳곳에 배치하였고, 플랫한 화면에서 종이 조각들이 튀어나온 듯한 효과를 유도했다. 이는 패널 외부 로 파편들은 흩어져나가며 파괴 후 멈춰버린 잔흔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꽃꽂이>와 유사한 정지된 폭발의 이미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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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꽃꽂이, 2023, 혼합재료, 170 x 240 x 300 cm, Blossom, 2023, 혼합재료, 210 x 200 x 25 cm




•만들어진 자연물

인공과 자연이라는 두 가지 개념은 도정윤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이 둘을 대립적인 관계로 생각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것이다. 인공물은 자연의 원료로 만든 것, 일상의 물건들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연이 도구라면, 인공적인 것은 그 결과로 우리 일상에서 현현된다. 그러나 작가는 역으로 자연물-꽃과 식물-에서 착안하여 인공적인 재료로 자연의 것을 제작한다.

<Blossom>(2023)은 직사각형 형태의 색종이와 포맥스를 엮어 꽃의 물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때 꽃은 관찰한 후 의 감정의 동요를 유도하는 계기가 아니다. 작가는 꽃을 이루고 있는 줄기와 잎, 수술, 모양새를 하나하나 해체해 원 형과 직선의 도형으로 간단명료한 형태로 축약시켰다. 벽면에 흩어져 부착된 물체들은 자연 속에서 성장한 꽃보다는 견고해 보인다. 마치 꽃이 작은 씨앗에서부터 천천히 발아하여 성장하듯, <Blossom>에서는 꽃잎-원형 주변으로 직 선-잎들이 뻗어 나간다.

여기에서 독특한 점은 콜라주 작업에서 화면의 기틀이 되었던 나무 패널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배 열하는 행위는 유효하다. 확장된 환경 속에서, 도정윤은 마치 공간의 벽면을 캔버스의 화면 삼아 파편들을 설치하였 다. 이로써 작가의 작업은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경계에 놓인다. 도정윤은 입체와 평면 작업을 거의 동시에 진행하 는데, 꽃이라는 동일한 소재를 다루었다는 점을 상기하며 다시 <꽃꽂이>로 되돌아가자면, 그것이 설치되었던 전시공 간에는 다채로운 원색의 물감으로 제작된 회화 몇 점도 함께 있었다. <Blossom>에 사용되었던 것과 비슷한 색으로 제작된 회화 <Blooming>, 두 작품을 연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Blossom>에서는 회화의 붓질이 만들어내 는 자유로운 흐름을 경직된 듯한 기초적이고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꽃의 복잡한 얽힘을 단순한 구조로 변 모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도정윤의 작업에서는 인공과 자연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꽤 오랜 시간 시도해왔던 인공 잔디, 인공조명 등 자연의 것을 대체 혹은 보완하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작가는 효율성보다는 자연물이 지닌 형상과 속성에 주목한 다음 그것을 기하학적 형태와 수직, 수평의 구조로 치환한다는 점에서 인공의 특성과 자연적인 물성의 결합을 시도한다. 여기에서 작가가 채택한 인공적인 재료들-플라스틱, 스티로폼, 그들로 이 루어진 기성품들-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산물들과는 달리 다시 자연으로 복귀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종종 불변함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인공의 사물들은 부동의 견고함으로 인해, 다른 모습과 목적을 획득할 수 없는 존재 들만 같다. 그러나 도정윤은 다 쓴 페트병에 나무 막대와 종이를 꽂아 만든 화분을 만들거나, 원래의 용도를 비틀어 쓰레기통을 화병으로 만들고, 생명력을 상실한 듯한 기성품을 채택해 피어오르거나 발산하고 있는 형상을 제작하는 등 유용성이 소멸된 재료를 선택해 역할을 바꾸어 놓았다.

최근 작가는 인테리어 소품들 속의 자본 논리를 탐구한다. 우리가 종종 방문하는 저렴한 물건들을 주로 판매하는 매장에 비치된 조화처럼, 자연을 모방한 상품들은 종종 원래의 ‘자연스러움’과 멀어진 채 판매된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소품들일수록 색채는 원색에 가깝게 만들어지고 단순한 모양으로 반복 생산된다. 반면 고급 인테리어 소품의 경우, 값싼 물건의 컬러차트와는 달리 안정적인 뉴트럴 톤을 띤다.1 이러한 도정윤의 시도는 자연물의 모방을 목표하였으 나 공정 과정에서 그 본질에서부터 멀어져 쨍한 색감으로 환원되는 생산 구조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높은 금액을 지 불할 수록 양질의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의 대척점에서, 상대적으로 덜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저가형 상품들은 도정윤 작업의 주된 재료와 도구로 새로운 역할을 부여 받는다. 사진 이미지를 물질로 바라보며 색상을 추출했던 것 처럼, 작가는 자본의 메커니즘에 몸을 맡기지 않고 소품들이 지닌 색과 외양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 쳐 도정윤의 작업에서는 자연과 인공이라는 뚜렷한 구분이 불가능해지고, 사물의 특성이 온전히 부유하게 된다.





1 도정윤 작가노트 참조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조소전공 오픈스튜디오 2024

Ewha Womans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Fine Arts. Sculpture. Open Studio 2024

⟪연금술사 The Alchemist⟫

일시: 2024.06.10(월 ) - 06.14(금)

장소: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관 A동 1층. 2층 (106. 108, 210호 )

시간: 10:00am-18:00pm



✳︎이 글은 ⟪연금술사 The Alchemist⟫(2024,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조소전공 오픈 스튜디오) 도정윤 작가 비평으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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