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곳에서 온 죽은 편지⟫, 황정아 개인전 전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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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곳에서 온 죽은 편지’라는 제목은 조금은 섬짓하게 들린다. 편지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살아있는 편지란 어떤 상태인지, 없는 곳은 어째서 확인 불가한 곳인지, 편지가 죽게 된 경위는 무엇일지. 편지 봉투에는 수발신에 대한 정보를 명확하게 기입해야만 한다. 그 정보란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이름, 목적지의 주소와 우편 번호에 해당한다. 그러나 정확한 입력 사항에도 불구하고 편지가 되돌아왔다. 기묘한 이 사건은 시간이라는 조건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일어났다. 서류상에 명시 되어 있는 주소, 혹은 정말로 존재했던 지역에 누군가의 기억은 여전히 머물러있기에, 시공간의 낙차는 편지를 목표지점에서 튕겨 내고 전송의 목적을 잃어버렸다.
황정아는 타인에 의해 거주지를 수차례 옮겼던 어린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되어 독립을 막 시작했을 무렵 <사서 The Letter>(2018-2023) 연작을 시작했다. 몇 년 전 작가는 어린 시절의 이사로 인해 뿔뿔이 흩어진 수 년 간의 기억을 복기하며, 당시 살았던 집과 주변 모습이 포착된 사진을 스캔하여 다시 프린트했다. 그런 다음 사진에 각인된 시간과 주민등록등본에 기재된 주소를 비교하여 해당 장소로 편지를 보냈다. 이것은 작가에게 있어 과거를 추적함으로써 불완전한 기억을 조립해내기 위한 탐색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우편에 적힌 발신자와 수신자는 모두 황정아 본인이었으나 주소지의 변경, 건물의 철거 등 뚜렷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편지들은 모두 그에게 되돌아왔다. 복잡한 경로를 거쳐 사진 위에 쌓인 라벨과 우표들은 황정아에 의해 위태롭게 연결되어 온 과거-현재라는 시간대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사진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이전의 기억, 그 공간에 머물렀다는 연약한 믿음은 작가에게 반송된 우편으로 인해 더욱 옅어지고 이주할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운명을 단단하게 만든다.
<사서 The Letter> 연작은 필름 사진과 주민등록등본,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촬영된 서울 장면의 사진들로 이루어졌다. 이 사진들은 작가와 가까웠던 인물에 의해 촬영된 이전의 필름 사진과 달리, 심지어는 건설의 현장을 반영하고 있을지라도, 소음이 삭제된 채 건조한 기운을 머금고 있다. 도심 곳곳의 재건축 장소와 철거 더미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연작에서는 건설 현장의 수직-수평 구조물과 불규칙한 사물의 축적이 교차된다. 붕괴의 잔해가 새로움을 위한 희망적인 시도의 일부인지, 혹은 옛 것의 청산을 목표한 파괴인지, 건설 현장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서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확실한 것은 건물이 무너졌고 그 곳에 살고 있던 누군가가 이동해야 한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들은 누군가가 살았다는 흔적을 지워내듯, 지금의 머뭇거림 없는 건설 현장을 드러낸다. 전시 공간에서 <사서>는 황정아의 유년 흔적에서 시작해 근래 도심의 기록물로 이어지며 선형적으로 연결된다. 벽면에는 기억의 불확정성을 드러내듯 산발적으로 사진들이 흩어져 있다. 주민등록등본 서류, 최근에 촬영된 이미지로 다다르는 동선은 작가가 머물고 있는 현재의 장소 역시 소멸될 수 있음을 은연 중에 알려준다.
<이름 없는 주소 Address Unknown>(2024)는 결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는 엽서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서>와 상통한다. 과거의 기억에서 출발하여 현재까지 이어지는 <사서>와 달리, <이름 없는 주소>는 사라진 국가인 동독에서 발행된 엽서와 19세기 미국의 극음악 ‘즐거운 나의 집’ 멜로디가 반복되는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1891년 미국에서 제정된 이민법에서 명시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undesirable aliens)’ 리스트를 참고하여 목록에서의 인물들과 본인의 위치를 비교하였다. 타인에 의해 호명된 당시 미국 사회의 이방인, 낯선 자, 소외된 인물들은 이름이 있지만 각 개인의 정체성이 지워진 채 또다시 다른 명칭으로 언제든지 불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해당한다.¹ 작가는 이러한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 을 참고하여 짧은 글을 작성하였고, 엽서에 레이저 컷팅 방식으로 글자들을 새김으로써 그것의 본래 기능을 무력화시켰다. 물론 동독이라는 국가는 과거의 역사 속에 멈춰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발행된 엽서는 이미 제 역할을 잃은 지 오래다. 작가는 앞으로도 발신될 수 없는 종이를 전시장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유랑하는 사람들이 삶 곳곳에 스며 들어있음을, 또한 어딘가에 정착할 수 없게 된 엽서와 그들을 등치 시킨다.
전시장에는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의 중첩된 멜로디가 반복된다. 본래 ‘집’의 따스함을 전달했던 원곡은 타지로 전파 되는 과정에서, 본래 주제와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어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후진음, 공장 기계음 등, 기계의 특정 기능을 사용할 때 울리는 음으로 익숙하다. 이는 다른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의 역할이나 목적에서 탈각되어 남은 것에 주목한 것으로, 타인에 의해 움직이는 과정에서 퇴색 되어버린 정체성과 관련된다.
<사서>의 이미지와 서류는 관객에게 누군가가 존재해왔음을 증명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된다. 그러나 전시장의 동선을 거치며 이들의 타당성은 곳곳에 놓인 엽서와 사운드 <이름 없는 주소>에 다다라 차츰 사라져간다. 기억을 명료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들은 전시장 벽에 붙어 있는 반면 <이름 없는 주소>의 엽서들은 공간 곳곳에 흩어져 있고 소리는 이곳의 공기를 울린다.
마치 액화하는 시대²의 인물들이 유랑의 숙명을 떠안고 살아가듯이, ⟪없는 곳에서 온 죽은 편지⟫에서는 목적지를 잃고,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이 감지된다. 전시는 불안함을 감각하는 주체가 ‘나’에서 ‘너’를 거쳐 마침내 ‘우리’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한때는 전부인 줄 알았던 장소들이 무력하게 무너져 내리고, 영원한 것은 없으며, 나만의 기억조차 믿을 수 없는 시대에서 황정아는 편지를 보낸다.
¹황정아 <이름 없는 주소 Address Unknown> 작가 노트 참고
²고체는 분명한 공간적 차원을 지니는 반면 유체는 일정한 형태를 오래 유지하는 일 없이 지속적으로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거나 변화한다. 따라서 액체는 그것이 차지하게 된 공간보다 시간의 흐름이 중요한데, 공간을 일시적으로 차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간성이 강조된다. 근대 역사에서의 새로운 속성은 ‘유동성’이나 ‘액체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액체근대』, 지그문트 바우만, 이일수 옮김, 도서출판 강, 2009, pp.8-9)
날짜 | 2024.7.2 - 2024.7.21, 월요일 휴무
시간 | 12:00-20:00
장소 | 안팎 (AnnPaak Space) @annpaak_space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로 96-1, 2F
서문 | 강다원 @daoneekang
설치 도움 | 이창민
✳︎이 글은 황정아 개인전 ⟪없는 곳에서 온 죽은 편지⟫(2024, 안팎 스페이스) 서문으로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