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우울증, 공황장애가 만났을 때

아플 거면 몸만 아프든가 아님 마음만 아프든가

by 그냥나

근래 자궁내막암 항암제인 파루탈을 끊고, 생리를 하지 않아 경구피임약 복용을 시작했다. 강제로 생리를 시작하기 위함이다. 파루탈을 1년 이상 복용하다 그만뒀을 때는 크게 부작용이나 변화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런데 경구피임약을 복용하니 다시 감정이 요동치게 됐다. 아, 몸이든 마음이든 한 곳만 아팠으면 좋겠다.


하필 약을 줄이는 시기에 경구피임약 복용이 시작됐다. 정신과 약을 줄이는 게 크게 위협이나 불안으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경구피임약이라는 새로운 호르몬제를 먹으니 변화가 제법 느껴진다. 예를 들어, 또 다시 밤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깬다거나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진다거나.. 지난 시간 동안 겨우 잘 잡아둔 '정상' 상태의 내 모습이 다 무너지는 느낌. 특히 아주 작은 자극에도 크게 무너지는 것 같아 지금 제법 정신적으로 조금 지친다.


몸과 마음이 다 아프면 안 좋은 점이 많다. 뭐, 당연한 건가? 일단 첫째로 약을 복용하는 데 훨씬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특히 정신질환 약물과 암을 치료하기 위한 호르몬제 모두 호르몬 변화를 가져오기에 초반부터 걱정 또 걱정헀었다. 근데 뭐 이 두 가지 정도는 스스로 케어해왔으니 괜찮다.


문제는 여기서 내가 더 아프면, 병원을 갈지 말지 그것부터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지금도 약을 먹고 있는데 다른 약을 먹게 되면.. 복용 시간은 어떻게 조정해야 하지? 이런 고민부터 하게 된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불편한 습관은 삶을 참 불편하게 만든다.


수년 전만 해도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어렴풋이 이해하기만 했다. 그런데 실제로 크게 아프고, 또 마음까지 힘들어지면서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늘 되뇌이고 있다. 하지만 그 건강 때문에 또 건강이 악화되고 힘들어지는 순간들도 있는 걸 보며.. 마냥 그 최고라는 말만 되뇌일 게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회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걸 느낀다.


하필 자궁내막암도, 내 중등도 우울증과 공황장애도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위험한 병이란 걸 안다. 그래서 사실 더 두렵다. 언제까지 이 병들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그래도 뭐, 언젠간 낫겠지? 또 이렇게 막연하게 좋아질 거라 믿어본다.


* * *


그래도 다음에 글을 쓸 때 쯤, 이것만큼은 꼭 나아지고 싶다.


1. 정신과 약을 더 빨리 줄일 수 있다면, 반년 내 단약을 할 수 있기를

2. 피임약 적응에 3개월이 걸린다 해도, 조금은 더 익숙해져서 가벼운 자극에 쉽게 흔들리지 않기를

3. 흔들리는 멘탈 속에서도 오롯이 중심을 지킬 수 있도록 심지가 더 단단해지기를

4. 이런 과정 속에서 적어도 자책은 하지 않기를

5. 계속 나아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기를


* * *


힘든 마음도 이제 서서히 끊어낼 때가 되었으니, 다음 글은 좀 더 밝게 쓸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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