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와 나' 리뷰
이 영화를 감싸고 있는 건 온통 사랑인데 왜 이렇게 슬플까.
영화관을 나오며 가장 먼저 든 의문이다. 영화는 내내 사랑을 발화한다. 때때로 오그라든다는 이유로 기피하기도 하는 그 단어를 너 그리고 나의 입을 빌려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감상한 이들이라면 이 영화의 기저에는 슬픔과 애도의 과정들이 담겨있는 것을 안다. 그러니 왜 이렇게 슬플까, 하는 물음은 의문이라기보다는 사랑으로 가득찬 영화에서 기어코 애도의 본질을 발견하게 하는, 창작자의 세심함의 관한 일종의 한탄일 것이다.
짙은 녹음과 화사한 빛들이 유리알처럼 번진 채로 눈을 즐겁게 해주고, 세미와 하은은 그때 그 시절에 살아있는 아이들처럼 생동감 있게 움직인다. 인물들의 길고 긴 호흡이 느껴져서 조금 힘들었고, 때문에 어느 순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세미와 하은이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 너머의 죽음과 삶과 또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어느 날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때 관객은 더 이상 그저 관객으로만 존재할 수는 없게 된다. 그러니까, 모두가 느꼈던 그날의 감정과 포착되어 뇌리에 오래 박힌 그 시간들을 오래오래 기억하는 목격자가 되어버린다.
그냥 모든 걸 다 토해내고 싶어지는 영화가 있다. 왈칵 울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목구멍 언저리에서 맴도는 눈물을 삼키다가 끝끝내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영화가 있다. 죽은 자의 시계는 어느 순간 멈추고, 거울은 살아있는 사람만을 비춘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건 죽은 자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에서 일종의 클리셰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2시 35분을 가리키던 시계를 기억한다. 왜 2시 35분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창작자의 이야기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시계가 멈춰있었다는 것.
흐르지 않는 시간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네'가 없이는 흘러가지 않는 '나'의 시간과, 물리적으로 멈춰버린 '너'의 시간. '너와 나'라는 제목은 이렇듯 명확하게 이야기를 관통하면서, 너라고 불리울 존재들에 관해 고민하게 만든다.
죽음이라는 건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가령 죽은 새를 묻어주려던 세미가 박스를 비우기 위해 친구들의 조각 작품을 바닥에 내려놓아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죽음을 담기 위해 조각이라는 흔적을 남긴 순간을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감독은 채 회수하지 못한 공룡 조각을 줍는 아이의 이야기를 삽입하고야 만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지만 살아있는 자는 언제나 그 흔적을 지닌 사람들을 구원한다.
빨갛고 탐스러운, 통통 소리가 나는 태몽을 떠올린다.
밴드나 붕대 대신 투박하게 감아준 랩을 떠올린다.
그 모든 것들을 떠올리다가 생각하다가 끝끝내 비인간의 언어를 통해 전해질 사랑을 떠올려본다. 그럴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고, 끝내는 그럴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영화는.
뒤죽박죽 섞인 꿈 같은 구성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내가 겪은 일련의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고. 엉킨 이어폰 줄을 풀지 못하고 그저 무너지는 하은이를 보면서 아프게 울고.
각자 다른 방법으로 수학여행 전야를 보내던 아이들의 인서트가 못내 아른거린다.
세미가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장면이 한 구석에서 사무친다.
너와 버스 창가 자리에 앉아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던 그 순간이 이 동네에서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고, 그 말을 하은이에게 한 세미가 조금 밉기도 했다. 어쨌거나 산 사람들이 남았으니까. 남은 이들을 지켜보는 일은 늘 괴롭다. 세상에 남겨진 이들은 예고없는 상실을 겪고, 빈 자리의 옆이나 뒤에서 나란히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 일들을 겪고 정리하고 다시 되새겨볼 수 있을 즈음에야 삶은 어떤 구색을 갖추기도 한다. 지독하게 잔인한 순간들이 비로소 남기는 것들.
언어는 유약함과 동시에 상당히 폭력적이다. 참사 이후 남겨진 이들에게 가해졌을 유약한 폭력에 대해 떠올려본다. 유약한 폭력에는 실체가 없었을 것이므로 그저 상상한다. 그러다보면 그냥 물 흐르듯 울고 싶어진다. 파도처럼 철썩이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이 모든 부재의 집합체 속에서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유리컵을 책상 안쪽으로 고이 밀어넣는 대신 단단히 서로의 손을 맞붙잡고 있던 찰나. 캠코더에 담겼을 반짝이는 미소.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에 관해 묻던 열여덟의 흔들리는 눈동자. 잘 가, 하던 작별인사와 짧고 깊은 입맞춤. 훔바바라는 오해가 이어준 질긴 인연과 입 모아 소리치던 동그란 입술들.
쉽게 찢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꽁꽁 붙여놓는 방법으로 마무리 짓는 순간을 함께한 관객들은 시간이 멈춘 듯 극장에 눌러붙는다.
우리 마음을 알기까지 참 오래 걸렸지 사랑해란 말은 아직 전하지도 못했는데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을 절절히 외치는 인물들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렇게 어느 곳에 멈춰버린 우리의 시간들과 함께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