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이아빠 Aug 04. 2023

EP 03. 핸들

[2012년 가을]

그 해 여름부터 시작된 엄마의 대학병원 진료는 심리검사, 약물치료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되었다. 치매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첫 담당의사의 진단에 감사하면서도 실비보험이 안 된다는 사실에 불안해했던 나지만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엄마와 함께 진료를 이어갔다. 그렇게 한 계절이 지나 이제 가을이 되었고 각 종 약을 투약한 지도 반년이 다 되어 갔다. 치매가 아니므로 치료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진료, 투약 등 모든 과정을 병원의 지시대로 성실하게 이어갔다. 또한 이때쯤만 해도 기억력이나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었으나 요리, 운전 등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했기에 엄마의 치료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치료를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났을까? 나갈 곳이 있다며 차를 끌고 나간 엄마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어디로 가야 돼?"라는 수화기 너머 엄마의 울먹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당황을 넘어 절망스러운 마음까지 들었으나, 속마음을 숨기며 주변 지형이나 건물에 대해 차근차근 물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다행히 집과 멀지 않은 곳에서 정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엄마, 움직이지 말고 거기 가만히 있어!"라는 외침과 함께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였는데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볼을 타고 계속 흘러내렸다. 다리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으나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차 안에서 생명력이 없이 초점 없는 눈빛으로 앞 만 바라보고 있었다. 휴가를 나와 엄마와 횟집에서 가리비를 먹을 때 봤던, 나에게 엄마의 변화를 감지할 기회를 줬던 그 눈빛이었다. 일단 엄마를 조수석으로 이동시킨 후 핸들을 붙잡았다. 심장은 쿵쾅대고 땀인지 뭔지 모를 건 계속 흘렀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다행히 집에 돌아온 후 엄마는 안정을 되찾았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집을 못 찾으며 울부짖던 엄마는 온대 간데없었고 평소와 같이 주방 근처에서 그릇을 정리하는 여유를 보였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된 건지 캐묻고 싶었으나 이내 마음을 돌렸다. 사실 난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엄마는 본인이 퇴행을 인지하고 있고 그걸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속을 알기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어갔으나 그날의 사건을 기점으로 엄마는 더 이상 핸들을 잡을 수 없었다.

이전 03화 EP 02. 한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