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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04. 2023

EP 04. 비용

[2012년 겨울]

반년 이상 진행한 치료는 효과는커녕 악화일로를 걸었다. 첫 번째 담당의사는 약만 처방해 줄 뿐 시간이 지날수록 치료방향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나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제공하지 않았다. 답답한 맘에 병원 측에 진료, 경과 등에 대한 클레임을 했고 그 결과 진료비가 더 비싼 특진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새로운 담당의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첫 번째 의사보다 연륜이 있어 보였다. 한동안 엄마의 진료 기록과 자료를 훑어보던 그는 "이 증상은 치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병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그가 치매 진단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너무 평이한 어투로 흘려내서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당황스러움을 뒤로하고 그의 이후 설명을 뒤따라가보려 했으나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같은 차트를 보고 어떻게 담당의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치매 판정이 내려질까라는 의문이 첫 번째였고, 엄마의 치료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두 번째였다.


혼자 사색에 빠져있던 나에게 집중해 달라는 듯 담당의사는 크게 기침을 한 후 본인의 말을 이어 갔다. "치매라는 것이 TV에 나오는 것처럼 단순한 질병이 아닙니다. 치매는 정삼각형과 같아요. 출발점은 각자 다르지만 그 끝은 퇴행의 과정을 거쳐 인생을 마무리하는 방향으로 흐른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의 말을 종합하면 엄마의 증상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퇴행 일로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돌이켜보면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엄마의 병이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6개월 이상의 투약기간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계속 악화되는 것을 보고 일반적인 병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이 끝난 후 나는 "그럼 치매 코드가 나오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치매 코드가 있어야 실비적용이 가능하고 그래야 치료비라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던진 질문이었다. 나 같은 보호자를 많이 본 듯 그는 당황한 기색 없이 치매코드가 나오며 진단명은 상세불명의 치매라고 설명해 줬다. 


진료실을 나와 상세불명이란 단어를 계속 중얼거리면서 의사의 설명을 되새겨봤다. 결론적으로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복잡한 생각과 감상에 빠진 것도 잠시 핸드폰을 키패드를 눌러 아빠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아빠는 엄마의 치매 진단에 대한 슬픔보다는 실비보험 적용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반기는 눈치였다. 순간 그런 반응을 보이는 아빠가 싫었지만 불과 몇 분 전까지 같은 생각을 했던 나였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슬픈 현실이지만 인정해야 했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은 언제부턴가 엄마의 치료를 비용의 개념으로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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