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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04. 2023

EP 05. 사진관

[2013년 봄]

엄마와 함께 대학병원 앞에 있는 사진관을 찾았다. 발병초기부터 건망증에 시달렸던 엄마는 가지고 있던 물건을 하나하나 잃어버렸는데 그중 하나가 주민등록증이었다. 신분증을 새로 발급받기 위해 진료를 마친 뒤 방문한 사진관은 낮고 허름한 1층 건물에 위치했다. 바깥에 샘플이라고 놓여있는 사진은 족히 10년은 넘은 듯 해진 모습이었다. 기왕 찍는 거 장사가 잘 되는 곳에서 예쁘게 찍으면 좋으련만 엄마는 진료 때문에 피곤하니 근처에서 대충 찍길 원하는 눈치였다. 사진관 안에 들어서니 다행히도 사진사는 밝게 인사를 건넸다. 엄마는 여느 또래 아줌마들처럼 넉살 좋게 인사를 받아치면서 웃음으로 사진사의 인사에 응답했다. "고모님? 아님 이모님?"이라고 묻는 사진사의 다음 질문에 엄마는 자신의 외모가 젊어 보이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듯 한 번 더 함박웃음을 쏟아냈다. 이 즐거운 대화는 안타깝게도 그렇게 끝나버렸다. 


엄마는 말을 더 이어가고 었으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 그... 저..." 뿐이었다. 단어를 떠올리지 못해 진땀을 흘리는 모습은 마치 제3국에 떨어진 외국인의 모습 같았다. 엄마의 상황을 캐치한 난 바로 부연 설명에 들어갔다. 이러이러한 질병이 있고 저러저러한 증상이 있어 대화가 어려우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에게 얘기하라는 설명이었다. 그 후로 사진사가 처음에 보여줬던 넉살과 웃음은 사라졌다. 장르가 코미디에서 다큐로 바뀐 느낌이랄까. 사진을 찍는 사진사의 얼굴에는 젊은 나이에 몹쓸 병에 걸린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과 젊은 아들에 대한 연민이 가득했다. 그는 중간중간 가라앉은 공기를 바꾸려 농담을 던지긴 했으나  역시 처음 그가 보여줬던 생기와 익살과는 많이 달랐다.


그날따라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유독 말이 없었다. 평소에도 본인이 겪는 변화를 인지하는 눈치였으나 이를 남이나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했었다. 그런 와중에 아들 앞에서 갑자기 고장 나버린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낀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괜히 어색한 공기가 싫어 말을 걸어볼까 싶다가도 창 밖만 바라보며 눈 길 한 번 안주는 엄마의  마음을 읽고 나 또한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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