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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04. 2023

EP 06. 고춧가루

[2013년 여름]

"아니! 왜 쓸데없는 일을 해서 교회에서 문제를 만들어?"라는 한탄과 함께 아빠는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대꾸도 안 하고 풀이 죽은 체 아빠를 뒤따라 들어온 후 조용히 방으로 향했다. 엄마에게 교회는 삶은 지탱하는 기둥 그 자체였다. 시작을 알 수는 없으나 섬 출신인 엄마는 고된 육지살이에 믿을 곳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믿을 곳이 아빠였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아빠는 그런 대상이 되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생쯤 되었을 때 한쪽 귀가 안 들리는 일이 있었다. 병원에 가야겠다고 말하는 나에게 엄마는 병원대신 교회 가서 기도하면 용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지금 같아선 절대 따르지 않을 제안이었지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엄마의 말은 꽤나 구속력이 있었으며, 이에 더해 보상으로 주어지는 용돈은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결국 난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병원대신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는 괴상한 행동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용돈이라는 당근을 얻는 대신 왼쪽 귀가 한 번씩 먹먹해지는 채찍을 맞았고 이는 지금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교회는 그만큼 엄마에게 절대적인 숭배의 대상이었다. 또한 그 믿음의 정도가 교회 안에서도 손꼽는 수준이었기에 나름의 지위와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교회에서 엄마가 뭔가 잘못한 모양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엄마가 아는 지인을 통해 교인들과 고춧가루를 공동구매했는데 그 과정에서 누가 얼마나 주문했는지, 돈을 얼마를 주었는지 기억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교회사람 대부분은 엄마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대화가 한두 마디만 넘어가도 단어를 못 떠올리거나, 엊그제 약속한 일을 처음 듣는 것처럼 행동하는 엄마였기에 누구나 이상한 점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대다수 교인들은 투병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답답하지만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엄마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증상을 모를 거라, 그리고 모르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억력과 인지능력은 자꾸 저하되고 있는데 이를 감추고 싶어 하니 현실에서 부조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떤 설명도 엄마에게 위로가 되진 않았다. 이렇게 엄마의 자존감은 기억력과 함께 바닥으로 향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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