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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04. 2023

EP 07. 구인광고

[2013년 가을]

엄마는 거실 한편에서 지역정보지의 구인광고를 훑으며 중얼거리고 있다. 교회에서 고춧가루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 이후로 본인도 적잖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한 동안 할 일을 찾아보자는 내 말에는 듣는 시늉도 안 하더니 갑자기 스스로 길에 널려있는 지역정보지를 한 아름 들고 와선 몇 시간째 망부석처럼 앉아 구인광고를 뒤지고 있다. 엄마는 소위 몸 쓰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 기억 속의 엄마는 그렇다. 세일즈라는 영어단어로 그럴듯하게 꾸몄으나 아파트를 무작위로 방문해 어린이 장난감이나 책을 파는 영업직이 내 기억 속 엄마의 첫 직업이었고, 교회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전도사는 두 번째였다. 둘 다 결국 입으로 하는 일이었을 뿐 엄마가 몸을 써서 일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엄마가 필사적으로 정보지를 뒤지며 마트 캐셔, 청소, 세탁 등의 일을 뒤지고 있는 걸 보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정보지를 뒤진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쯤, 엄마는 그중 한 곳에 가보고 싶다며 나에게 데려달라고 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적극성이 약간 부담스럽기까지 했으나 그래도 뭔가 해보려는 의지를 가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며 옆에 앉은 엄마를 살펴봤는데 그 차림새에 의아함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엄마가 애들 용품 판매를 잘하고 교인들에게 말발 좀 세우던, 소위 직업적으로 잘 나갈 때 입던 검은색 줄무늬 투피스였다. 그동안 찾아본 구인광고와는 TPO가 맞지 않아 보였지만 굳이 초장부터 엄마에게 부정적인 얘기를 할 필요론 없다는 생각으로 입을 다물었다. 20분 정도 차를 몰고 갔더니 도시 외곽에 허름한 공장 앞마당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반기는 이가 없어 공장 안으로 들어갔더니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이불을 옮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구직 때문에 왔는데 사장님 어디 계시죠?"라는 나의 질문에 고개를 들어 보인 그녀는 나와 엄마를 한 번씩 훑어본 후 시선을 돌려 공장 안을 가리켰다.


사장으로 보이는 50대 남자는 시끄러우니 밖에 나가서 얘기하자며 다시 공장 밖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공장 마당에서 우리를 보며 돌아선 남자는 난처한 눈빛과 함께 입을 떼었다. "여자분이 일하시는 거죠? 엄마에요?"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한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해당 공장은 근처 모텔 등에서 세탁물을 받아 운영하는 세탁공장인데 하루 6시간 일하는 여성 구인광고를 올렸더니 사람들이 소일거리쯤으로 생각하고 공장으로 왔다가 공장의 소음과 기존 직원들의 구슬땀을 보고 도망간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이어진 "이런 일 안 해보셨을 거 같은데 괜찮겠어요?"라는 그의 질문에 나는 고민해보고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엄마 대신 뱉었다. 옆에 멀뚱히 서있는 엄마는 이미 공장의 소음과 쌓여있는 세탁물에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사장님의 시간을 뺐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까지 생겼다. 급하게 인사를 하고 엄마와 함께 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나름 모험을 한 엄마는 꽤나 실망한 모습이었다. 그 실망이 세탁공장에 대한 것인지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숨을 푹 쉬며 말이 없는 엄마는 또 한 번 세상 앞에서 작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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