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이아빠 Aug 04. 2023

EP 02. 한숨

[2012년 여름]

드디어 부대의 철문을 나섰다. 전역하는 날 나의 지난 2년을 돌아보니 다소 치졸했던 내 모습과 힘든 시간을 버텨냈다는 뿌듯함이 뒤섞여 묘한 감정이 들었다. 전역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나는 최대한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행력하나는 좋은 편이기에 결국 전역 1주일 만에 시골 외곽도로에 있는 아웃렛에서 옷가게 점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일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그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을 앞둔 한 살 위 동료직원은 매일같이 성매매 업소를 헤매었고 그 친구라는 놈은 재수 씨에게 걸리지 않게 도와준다며 낄낄거렸다. 거기에 남자직원 A와 바람을 폈다는 여자사장, 그걸 욕하고 나에게 말해주는 50대 아주머니 직원들, 그리고 돈은 없으나 자존심만 강한 손님들까지 어찌 보면 그 쯤해서 고향을 떠나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엄마의 이상증세는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직은 일상이 가능한 수준이었으나 휴지를 휴지라 부르지 못해 스스로 답답해하는 엄마와 이를 지켜보는 나의 모습은 안타까움이란 단어 그 자체였다. 처음 엄마의 이상증세를 느낀 휴가로부터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진행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군대에 있는 동안 아빠와 형은 그 심각성을 잘 인지하지 못했기에 전역 후에도 각자의 직장과 삶에 치중하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아직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환경이었기에 아빠는 치료를 망설이는 모습도 보였고 형은 본인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여유가 없어 보였다. 결국 성격이 급한 내가 아빠를 어찌어찌 설득했고 그때부터 엄마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매기 시작했다. 나름의 노력 끝에 다수의 병의원을 지나 어느덧 지방에서 꽤나 규모가 있는 대학병원까지 발길이 닿게 되었다.


대학병원은 여러므로 복잡했다. 예약접수부터 시작해서 진료, 수납 등 절차와 물리적인 동선 등 처음 경험하는 엄마와 나에게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 또한 병의원급에서 이미 CT, MRI 등의 검사를 했으나 대학병원에선 본인들의 장비로 다시 촬영을 해야 한다며 진료에 앞서 여러 검사를 하도록 안내했다. 결국 반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엄마와 나는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인자한 표정을 하고 있던 담당의사는 엄마의 검사결과를 훑어보더니 적잖게 당황한 눈치였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것저것 묻던 그는 "이 증상을 치매로 볼 수는 없어요."라는 결론을 우리에게 던졌다. 그의 진단에 엄마가 나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차올랐으나 그것도 잠시뿐, 마음 한 켠에서는 걱정과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가 치매가 아니란 말은 실비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즉 치료비를 온전히 환자 가족이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아빠에게 설명해야 할지, 차라리 치매라고 판정받는 게 나았던 건지 등 여러 생각에 휩쓸리다 보니 담당의사의 그다음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진료실을 나왔으나 또 한 번의 난관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각종 검사비로 인해 첫 진료에 청구된 금액이 백만 원이 넘었던 것이다. 청구된 금액을 보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집안의 넉넉지 않은 형편과 실비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사실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금액이었다. 물론 검사비가 포함되어 있어 다음 진료부터는 십만 원 내외가 든다고 설명받았으나 이 또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우리 집의 형편 상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이 같은 현실적인 고민에 빠진 나와 달리 옆에 앉아 있는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싱긋 웃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엄마의 천진난만함에 현실을 잊을 만도 하지만 걱정이 앞선 나는 한숨만 푹푹 쉬며 병원을 나섰다.


이전 02화 EP 01. 첫 번째 기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