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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04. 2023

EP 01. 첫 번째 기회

[2011년 여름]

군대에 끌려간 지 약 1년이 지났다. 군대의 상명하복과는 맞지 않는 나란 사람은 그 흔한 포상 하나 받지 못해 1년 가까이 부대 안에 갇혀 지냈다. 끈질긴 버팀 끝에 입대 후 1년이 지나서야 정기휴가를 사용해 철문 밖으로 발을 뻗을 수 있었다. 철문 안에 갇혀있던 1년, 그 사이 우리 가족은 몇 번인지 셀 수도 없는 이사 끝에 조그만 1층 빌라를 매수해서 이사했다. '우리 집'이란 단어는 나에겐 참 낯선, 솔직히 말하면 처음 경험해 보는 표현이었다. 아빠의 사업실패 이후 '가난'이라는 단어를 가족의 일원으로서 몸소 체험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수도 없는 이사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학창 시절 등하굣길을 지나며 "저 집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이 집정도만 돼도 괜찮을 텐데" 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다녔을까. 그렇게 긴 시간 철새처럼 여러 집을 옮겨다닌 끝에 생긴 '우리 집'이었기에 그 사실만으로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또한 아빠에 더해 형이 일을 시작하면서 조금은 숨 통이 트여갔고, 엄마도 직업인지 취미인지는 모르겠으나 교회 근처를 배회하며 소소한 경제활동을 이어갔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내가 입대한 사이 풍족하지는 않지만 시골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점점 갖춰가고 있었다.


장장 4시간이 걸려 집에 왔으나 아빠와 형은 무슨 일인지 1년 만에 휴가 나온 나를 만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엄마는 괜스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신 맛있는 점심을 사 줄 테니 마음을 풀라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를 따라나선 곳은 동네에 있는 조그만 횟집이었다. 사실 난 회 맛을 모른다. 물컹한 식감에 비릿한 향, 도저히 이것을 왜 음식이라 칭하는지 공감할 수가 없었다. 이런 내 맘을 알리 없는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아들에게 큰 선물을 했다는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평생을 섬에서 살다 아빠와 결혼한 후 육지로 올라온 엄마이기에 해산물은 자신의 고향이자 추억이었다. 횟집을 데려간다는 건 어찌 보면 본인의 가장 귀한 맛과 기억을 나에게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며 어쩔 수 없이 회 몇 점을 집어 맛있게 먹는 시늉을 했다. 내가 억지로 먹는 걸 알고 그러는지 혹은 휴가 나온 아들의 모습이 귀여운 건지 그 속은 모르겠으나 엄마 나를 보며 연달아 미소를 건넸다. 엄마의 미소가 옅어질 무렵 가리비 한 접시가 나왔다. 먹는 방법을 몰라 가리비만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는데 반대편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왜 이리 조용하나 싶어 당신의 두 눈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털썩 내려앉았다. 초점 없는 동공, 회색 눈빛, 마치 생명력을 잃은 화초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그 모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고 짧은 휴가 후 철문 안으로 복귀하는 순간까지 떠올랐다. 불편했던 그 장면, 돌이켜보면 횟집에서의 식사가 내가 엄마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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