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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이아빠 Aug 04. 2023

EP 15. 관심

[2016년 겨울]

"어머님께서 걷는 걸 어려워하세요." 사회복지사의 전화였다. 나의 서울살이와 함께 시작된 엄마의 요양원 생활은 어느덧 1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입소 초반에는 엄마의 부적응 때문에 요양원에서 자주 전화를 받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전화가 점점 뜸해졌다. 때마침 일도 바쁜 시기였 던지라 엄마는 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었던 탓에 갑작스러운 엄마의 소식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주말에 요양원으로 향했다. 지하철, 기차, 그리고 버스까지, 엄마의 요양원은 주변에 있는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요양원에 도착해 벨을 누르니 여느 때처럼 외부인의 방문을 알리는 "출입자! 출입자!" 소리가 건물 출입구를 울렸다. 오늘은 간호조무사가 나를 맞이하며 "아이고! 아드님 오셨군요!"라는 말을 건넨다. 요양원에 올 때마다 같은 알림음과 인사말을 듣는 경험은 아무리 반복해도 적응이 안 됐으나 내색하지 않고 가볍게 목례를 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웬일인지 방 안에 혼자 앉아있었다. 엄마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 후 몸을 일으켜 세우니 얼굴을 찡그리며 절뚝거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짠함, 속상함 등 여러 감정 때문에 정신이 아득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특별히 물리적인 사고는 없었기에 본인도 이유를 모르겠다는 답만 돌아왔으나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계속 묻다 보니 지난주부터 요양원에서 자체적으로 약을 처방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원래 엄마의 치매약은 내가 직접 처방받아 요양원에 전달했다. 간혹 환자가 직접 와서 처방을 받아야 한다는 병원이 있긴 했으나, 수년간 이 병원 저 병원을 오가며 치료해 왔던 탓에 의사들도 사정을 알고 대리처방에 협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월 1회 요양원의 연락을 받을 때마다 지방으로 향해 엄마의 약을 전달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요양원이 나에게 연락하는 시기를 놓쳐 정기적으로 시설에 방문하는 촉탁의에게 약을 처방받았다는 설명이었다. 엄마의 치료와 투약경과를 직접 관리해 왔던 나로서는 황당한 이야기였다. 엄마는 영유아에게 투약하는 약에도 부작용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약물 교체는 납득하기 어려운 행위였다. 화가 올라와서 순간 언성을 높였으나 이들이 엄마를 1년 365일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다시 침착하게 엄마의 부작용과 투약 이력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담당 직원의 사과와 향후 투약 방식에 대한 확답을 듣고 나서야 약을 처방받기 위해 엄마와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처음엔 혼자 이동하여 대리처방을 받을 생각이었으나 요양원 원장님이 공용차량의 키를 건네준 덕에 엄마와 동행할 수 있었다. 주말인 탓에 병원은 환자로 가득했고 30분 정도 대기한 후에야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머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의사는 밝은 인사를 건네었으나 이내 엄마의 절룩거림을 보고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그녀는 치매가 무엇인지, 그 끝은 어떤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악화되는 환자의 병세를 눈앞에서 지켜보니 기분이 썩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밝은 미소를 다시 장착하며 엄마의 상태를 돌보기 시작했다. 의사의 질문과 나의 답변이 몇 차례 오간 끝에 새로운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요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진료실을 나서며 의사에게 들은 조언을 상기해 봤다. 문장 전체는 기억나지 않았으나 '관심'이라는 단어가 명확하게 떠올라 핸들을 꽉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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